▲ 구연동화 전문가 김미화 씨가 읽어주는 『강아지똥』 이야기에 “오메 주여”라며 추임새를 넣는 할머니들, 2년 전 한글교실이 파하면서 그동안 한산했던 읍 부호리 마을회관이 은빛책날개가 들어가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해남읍 부호리 마을회관 찾은 해남우리신문 ‘은빛책날개’ 
할머니들, 이야기 들으며 웃으랴 눈물 훔칠라 바쁘다 바빠

예전엔 교통편이 워낙 안 좋아 장가가기도 어려웠다는 해남읍 부호리. 명절을 앞두고 한산한 부호리 마을회관에 지난 13일 마을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어르신들이 하루에 5분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며 해남우리신문과 해남공공도서관이 기획한 세 번째 ‘은빛책날개’다. 해남공공도서관(관장 박은정)은 이번에도 어르신들이 읽기 쉽도록 그림이 많고 활자가 큰 책을 준비했고 해남우리신문은 마을회관에 30여권의 책을 비치했다. 그리고 지난 24일 마을회관을 다시 찾았다.


부호리는 6년 전 최명환 이장이 부호리 한글교실을 직접 열면서 방송도 많이 탔다. 당시 인근 마을 할머니들은 부호리 할머니들을 부러워했고 장에 나가면 아는 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글교실이 열릴 때 부호리 회관은 종일 웃음바다였다. 글씨를 몰라 버스 탈 때면 몇 번이고 물어 확인해야 했던 할머니들은 이제 한글을 모두 뗐다. 6년이 지난 지금 부호리 할머니들은 받침까지 맞는 한글은 아니지만 이름 석자 모두 쓸 수 있고 부호리 글씨를 보고 버스탈 수 있게 됐다. 47명이 입학했던 한글교실, 그 사이 병원에도 입원하고 나이 먹어 글씨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할머니들도 생겼다.

 

2년 전 한글교실이 파하면서 그동안 한산했던 마을회관이 지난 24일 모처럼 생기를 찾았다.
구연동화 전문가 김미화 씨가 읽어주는 『강아지똥』이야기에 할머니들은 “오메 주여”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마을회관에 모인 이들 모두가 부호리 작은 교회의 교인이다. 70~80대를 훌쩍 넘은 연세로 다들 권사 직급을 하나씩 맡고 있으니, 찌르면 “오메 주여”, “아멘”이다. 작은 민들레꽃 그림 하나에 “주여”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따뜻한 이야기에 눈물 흘리기도 한다.


김미화 씨가 책 표지에 강아지를 가리키며 “얘가 지금 뭐하고 있죠”라고 말하니, 한 할머니가 “강아지가 똥 싸고 있어”라며 받아친다. 그러자 방안이 한바탕 웃음장터가 된다. 강아지똥 이야기에도 웃긴 모양인지 다들 배꼽을 잡는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강아지똥이 파란 민들레 싹을 만나 그의 거름이 되어 노란 민들레를 피우는 『강아지똥』이야기. 김미화 씨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어드리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해온 어머니들이 민들레를 위해 거름이 된 강아지똥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어머님들이 자식들을 그렇게 예쁘게 키워내셔서 지금 자식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할머니들은 “그렇지. 부모마음 다 똑같지”라며 눈물을 훔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할머니들이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두 번째 책은『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책장마다 옛날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민화 그림이 가득하다. 세상에서 제일 힘셌던 수탉이 나이가 들어 울음소리도 줄고, 고기를 씹어도 잘 씹어지지도 않는단다. 할머니들은 “아무 쓸모 없어”, “처량하고만”이라며 수탉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암탉의 위로 덕분에 다시 제일 힘센 수탉이 된 이야기를 보면서도 자신은 “글을 오래 보면 잘 안 보여. 이젠 다 됐제”란다.
그래도 80대에게 70대는 젊은이, 60대는 애기들이라고 하니 청춘들 여기 다 모였다.


한글교실에서 열성을 보였던 최명환 이장은 벌써부터 들썩거리는 마을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최 이장은 “올 봄엔 맛난 음식들을 싸 가지고 가까운 뒷산에 소풍가 책을 읽어야겠다”며 행복한 구상을 하고 있다.
그림을 제법 그린다는 천금단(84), 김쌍업(82) 할머니는 책을 보며 이런 그림들을 따라 그려볼 것이란다.

 

이날 마을회관에는 이숙자(77), 한자근(83), 김쌍업(82), 정귀임(80), 김안례(76), 김감례(78), 천금단(84), 이순복(88), 이옥려(82), 오순남(77), 조동심(78) 할머니가 함께했다. 이장님은 오늘은 안 왔지만 열심히 책을 읽는다는 김형순(76), 이연금(87) 할머니 이름까지 불러주며, 나머지들까지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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