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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한 번 읽어볼라요”…동네할머니가 책 읽어주는 옥천 백호
조아름 기자  |  5340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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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5  13: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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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면 백호마을은 할머니도서관 중 유일하게 동네 할머니들이 책 읽기 자원봉사자로 나선 곳이다. 먼저 윤경자·윤남례 할머니가 읽기강사로 나섰고 다음 책읽기에도 할머니들 간에 순서를 정해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윤경자·윤남례 할머니, “못 읽어도 잘 들어보소”
같은 마을 조선미씨도 책읽기 자원봉사자 나서

해남에서 공무원, 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옥천 백호마을에 해남우리신문과 해남공공도서관이 함께하는 ‘은빛책날개’ 할머니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백호마을은 할머니 도서관 중 유일하게 동네 할머니들이 책 읽기 자원봉사자로 나선 동네다.
지난 13일 책을 읽어줄 조선미, 최순덕 자원봉사자와 함께 백호마을을 찾았다.

   
 

이날 책 읽기는 백호마을의 두 할머니가 먼저 시작했다. 부녀회장인 윤경자(72) 할머니가 먼저 앞쪽에 나와 앉아 입을 열었다. “못 읽어도 읽을 랍니다. 저는『호랑이를 잡은 우리 아빠』를 읽겠습니다.” 어색하게 이어지는 말이지만 할머니들은 제각각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이 책에는 호기심이 많은 6살짜리 아들 돌이와 아빠가 등장한다. 궁금한 것이 많은 돌이의 질문에 아빠는 엉뚱하고 재밌는 답변을 한다. “아빠, 아빠는 왜 턱에 수염이 나요?”라는 물음에 고슴도치 가시에 턱을 찔려 가시수염이 나기 시작했다는 답변부터 살구씨를 꼴딱 삼켜 목젖이 생겼고, 어느 날 호랑이와 싸우다 호랑이 발톱에 긁혀 배에 상처도 생겼지만 호랑이굴에서 예쁜 아가씨를 구해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한다.
윤경자 할머니는 짧은 이 이야기를 느리지만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귀엽고 엉뚱한 이야기에 할머니들 얼굴엔 미소가 떠오른다.


윤경자 할머니는 “인자 아짐이 읽으소”라며 바톤을 윤남례(84) 할머니에게 넘긴다. 윤 할머니는 다리를 움직이기 불편하다며 그 자리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제가 한 번 읽겠습니다. 저는『은혜 갚는 까치』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옛날 시골에 한 젊은이가 있었어요.”
윤남례 할머니는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한다. “두 마리의 까치가 느티나무 위에서 울고 있었어요. 구렁이가 혀를 널름거리며 까치를 향해 기울거리고 있지 않겠어요.” 국어책에서 읽어 아는 이야기라던 할머니들도 “오메 어찌까”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단어를 빼먹고 읽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읽어도 좋다. “구렁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젊은이를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흥미진진한 구렁이 이야기에 할머니들도 책을 읽는 윤남례 할머니 옆으로 모여든다.
꼼짝없이 죽을 줄로만 알았던 젊은이. 종지기도 없는 누각에서 12시가 되자 종이 저절로 울렸다. “까치들이 머리로 종을 친거여.” 할머니들은 기억 속 이야기를 풀어내며 까치는 은혜를 갚으려고 종을 치다가 머리가 깨져 죽었을 거란다.

   
 

이야기가 끝나자 한 할머니는 “아는 이야기도 새삼스럽소”라며 재미있단다.
이어서 백호마을에 사는 자원봉사자 조선미 씨가『줄줄이 꿴 호랑이』를 읽기 시작한다. “옛날에 게으른 아이가 있었답니다.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먹고 윗목에서 똥싸고. 아랫목에서 밥먹고 윗목에서 똥싸고.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노인정, 마을회관이든 똥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이 터진다. “똥싸고”라는 말이 나오자 웃음 한바탕이 벌어진다. 조선희 씨가 목소리를 바꿔가며 재미있게 책 한 권을 금방 읽어낸다.


이어 자원봉사자 최순덕 씨는『장화홍련전』을 읽는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도 보고, 할머니가 늘 해주던 이야기지만 새삼스럽게 재미있단다. 큰 딸인 장화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는 계모를 보고 할머니들은 “나쁜 놈이고만. 나쁜 엄마여”라며 주저리주저리 욕을 한다.
결국 장화와 홍련이를 누명 씌워 죽인 계모가 큰 벌을 받고 죽게 되니 “잘 했어. 죽어서”라며 무서운 말도 한다. 두 딸을 보내고 적적해 셋째부인을 들인 배좌수를 보고는 “그놈이 그놈이여, 속없어”라고 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한참 듣던 이옥월(79) 할머니는 “우리 손자는 내가 책 읽어주면 딱 뺏어서 엄마한테 갖고 가. 이렇게 재밌게 읽어줘야 할 것 인디 난 줄줄 읽은 게 재미가 없어”라며 하소연을 한다.
또 다른 할머니는 “옛날에 애들이 만화책 보면 쓰잘데기 없다고 혼냈는데 우리들이 봐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고만”이라며 소감을 풀어내기도 한다.


한편 다음에도 백호마을에서는 할머니들이 먼저 책을 읽기로 했다. 다음 순번도 미리 정했다. 이날 할머니도서관에는 윤명례(92), 임금님(94), 신옥순(94), 신영심(86 ), 이수님(84), 이옥월(79), 박순례(75), 김태님(86), 최순자(76), 김용을(81), 정애순(78), 윤경자(72), 윤남례(84) 할머니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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