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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처지가 어디 있으리오…이순신 이진서 몸져눕다
박영자 기자  |  hpak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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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11  11: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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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를 통해서 본 이순신과 해남 - ①북평면 이진편]

백의종군 5개월20일만에 도착한 북평면 이진마을
이순신, 감내하기 힘든 고통 앞에 4일간 인사불성

   
▲ 1596년 8월25일 이순신은 이진에 첫 방문을 하게 되는데 하루전날 일기에서 강진 가리포는 전라도 요충지지만 형세가 외롭고 위태롭기에 하는 수 없이 해남 땅 이진으로 옮겨 합진했다고 적고 있다.(북평 이진성)

이순신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몹시 아팠다. 배설로부터 12척의 배를 인수받은 후 처음 도착한 곳이 북평면 이진이었다. 백의종군 중일 때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참배당하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울분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조국의 위기 앞에 놓인 무게 때문이었을까. 백의종군 후 그토록 그리워했을 판옥선에 다시 올라 바다에 나왔지만 이순신은 승선 첫날 밤 토사곽란으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다. 그곳이 북평면 이진이었다.  

 

두 번째 찾는 북평 이진

북평면 이진은 임진왜란 기간 이순신이 두 번 찾았던 곳이다. 두 번 모두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함으로 왔지만 처지는 너무 달랐다. 첫 인연은 1596년 8월,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다시 올 전쟁을 대비해 전라도 일대를 순시할 때이다. 이때는 조선수군이 재해권을 장학하고 있던 시기였고 해남은 전쟁의 폐해로부터 안전할 때이다. 이진에 도착한 이순신은 점심을 먹고 해남현으로 향한다.
두 번째 방문은 백의종군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배설의 배 12척을 인수한 다음날인 1597년 8월20일이다. 이때는 왜군이 육지와 바다에서 뒤쫓아오는 위급한 상황이었고 조선수군은 괴멸된 상태였다.
이순신은 이때의 상황을 난중일기에 남겼다. ‘배설로부터 배를 인수받은 장흥 회령포는 포구가 좁아 북평 이진으로 진을 옮겼는데 너무 아팠다. 곽란으로 2번이나 인상불성이 되었다. 대변도 보지 못했다. 병세가 몹시 위험해 배에서 머무르기가 불편해 포구 밖에서 잤다’.(난중일기 1597년 8월20~23일)
이순신이 북평면 이진에 머문 기간은 5일, 위급한 전쟁 중이었고 12척의 배로 일본수군을 맞아야 할 위급한 상황인데도 이진에 머물러야 했다. 이순신은 이때의 상황을 난중일기에 인사불성이 될 만큼 아팠다고 적고 있다. 이순신은 3일 밤을 이진바다에서, 하룻밤은 이진마을에서 잔 후 24일 새벽에 북평면 영전으로 향한다. 영전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송지면 어란을 향해 출발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해인 1592년부터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까지 전장에서 일기를 썼다. 난중일기에는 명량해전 전후로 해남과 관련된 많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때 말을 타고 육지에서 생활했다. 따라서 이순신에게 있어 이진으로 오는 길은 백의종군 후 처음으로 배를 탄 길이었다. 그런데 승선 첫날 몸져눕고 만 것이다.
이순신은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한 후인 1597년 8월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하지만 이때에도 그에겐 배가 없었다. 칠천량에서 도망친 배설의 배 12척이 있었지만 배설은 이순신에게 배를 쉽게 인도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1597년 8월17일 강진 군영구미(강진 대구면)에서 배설로부터 배를 인수할 계획이었지만 배설은 이를 어긴다.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은 다음날 육지를 통해 장흥 회령포에 이르지만 이때도 배설은 배 멀미를 핑계로 나오지 않다 19일에서야 이순신에게 배를 인도한다. 삼도수군통제사 복귀 14일 만에 12척이나마 군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

   
▲ 북평면 이진마을 회관은 조선시대 수군진이 있었을 때 만호와 군사가 머물렀던 만호청이었다. 이순신이 아파 배에서 내려 묵은 곳이 지금의 마을회관 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진회관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지역을 아우르는 항일독립운동 기지역할을 한다

이진까지의 눈물겨운 여정

이순신이 이진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정말로 눈물겨웠다. 한산도 대첩 등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그는 1597년 2월 수군본영이 있던 한산도에서 체포돼 원균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서울로 압송된다. 그해 4월1일 풀려나지만 얼마 후인 13일 어머님이 돌아가신다. 이때의 심정을 난중일기에는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했다’고 적고 있다. 이순신은 상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도원수 권율진영을 향해 집을 떠난다. 이때 난중일기는 ‘길을 떠나며 어머니 영전에 인사를 올리고 울부짖었다.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에 나 같은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일찍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몸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장수들과 현감, 지역 유지들이 밥을 주고 재워준다.
그러나 현감 등이 도망가 버린 현에선 빈 청사에서 잠을 자고 구례에서는 퍼 붇는 비속에서 잠잘 곳을 얻지 못하자 아들이 주인에게 사정해 겨우 잠자리를 빌린다. 시냇가에서 아침을 먹는 등 고통이 컸지만 이순신은 절대로 백성들에게 물건을 받거나 밥을 얻어먹지 않았다. 백의종군 중인 난중일기에는 ‘정혜사(충남 창양군) 승려가 미투리 한컬레를 바쳤으나 거절했다. 그래도 한사코 졸라대니 돈을 주고 산 후 미투리를 정원명에게 줬다’, ‘고을사람들이 밥을 지어 주었으나 종들에게 먹지 말라고 타일렀다. 다음날 아침에 종들이 고을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고 하자 이들을 매질하고 밥쌀로 도로 갚아주었다’, ‘승장 처영이 보러왔다. 부채와 짚신을 바치기에 나도 다른 물건으로 갚아 보냈다’.

   
▲ .(왼쪽) 북평면 이진마을 입구에 서 있는 수군만호 기념비.

수군재건하며 이진까지

1597년 7월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 칠천량 해전의 참패를 듣는다. 7월18일 난중일기는‘듣고 있으니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틀 후 일기에는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해 눈병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칠천량 참패 후 원수 권율이 이젠 방법이 없다고 하자 이순신은 자신이 직접 해안지역으로 가서 듣고 본 뒤에 방책을 세우겠다며 길을 떠난다. 이때 권율이 군사를 보내주지만 말도 없고 활도 없었다. 이순신은 이때의 심정을 난중일기에 ‘매우 한탄스럽다’고 적고 있다. 이순신이 백의종분 신분으로 전라도 해안지역을 돌고 있을 때인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한다는 교지가 내려온다. 이때부터 이순신의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수군재건이 시작된다. 하동 구례 영광 곡성 장흥 등으로 내려오는 여정, 그러나 1596년 전라도 순시에 나선 때와 달랐다. 난중일기에는 ‘관청은 모두 비어있고 민가도 비어있었다. 길에는 피난민들로 가득 차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적고 있다.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순천에선 무기와 대포, 화약, 화살을 구하고 보성에서 군량미를 다량 확보하고 있을 때 선조로부터 수군을 폐지하라는 교지가 내려온다. 이에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장계를 보성에서 올린다. 그리고 장흥 회령포에 이르러 배설로부터 배 12척을 인수받고 다음날 8월20일 12척의 배를 타고 첫 도착한 곳이 북평면 이진이었다. 이날은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 나온지 5개월 20일만이었고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26일 전이었다.
백의종군 후 첫 승선의 길, 그러나 이순신은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몸이 불편하다든가 병에 걸린 것을 언급한 대목이 180여회에 나온다. 그러나 이진에서의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원균과의 갈등과 미움, 민초의 참상 등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일을 그는 겪어왔다. 이순신이 12척이나마 군용을 갖춰 출발한 첫날, 이진에서 아파 누운 것은 인간 이순신이 겪어야 했을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 수군만호가 존재했을 당시 사용했던 우물이 마을 중앙에 있다.

사진=노명석 시민기자/

다음호에는 1596년 8월 난중일기 기록을 토대로 북평면 이진에서 해남읍~황산 남리~우수영~다시 해남읍까지 이어지는 이순신의 여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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