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재걸(전언론인, 시인)

민주국가의 근간이 되는 요소는 다종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첫째 요건은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충족이 바로 그것이다.
엊그제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성난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며 한목소리로 국정난맥상을 질타한 것도 사실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절차적 정당성’을 송두리째 무시해 온 탓이다.
나라 꼴이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작금에, 그러면 내 고장 해남군정은 안녕하신가?이다.
지난주 우리 지역 언론이 앞 다투어 다룬 문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해남군의 ‘관광정책 부재’로 요약된다. 해남의 주요관광지로 볼 수 있는 녹우당(국가 사적 제167호) 안에 대형 콘크리트 숙박시설을 허가할 것이란 보도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의 부지는 녹우당 매표소 맞은편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60-1, 2)에 소재한 면적 2000여 평의 부지가 그 대상이다.
이곳은 쉽게 말해서 녹우당 초입의 얼굴(현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형 콘크리트 빌딩의 숙박업소가 떠억 버티고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니 이 사안 역시 담당공무원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문화재 보존구역은 문화재청이 1, 2, 3구역으로 나누는데 제1구역은 절대보존 즉 개발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며 제2구역은 건물의 높이와 형태, 양각(기울기)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라남도는 국가지정 문화재주변 개발행위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500m 이내의 개발행위는 여러 경우를 모두 점검해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한 치의 허술함도 없어야 한다는 점을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편한 대로 ‘2구역 개발허가 지침’만을 수용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제2구역이라 하더라도 ‘문화재 전문가’의 의견과 평가 및 심의를 받게되어 있는 데도 말이다.
해남군은 또 녹우당 안에 대형숙박업체 건축허가 건에 대해 해남윤씨 문중에 그 어떠한 안내나 설명도 한 바 없다. 뒤늦게 안 문중 측에서 이에 대해 항의하자 “내가 왜 설명을 해야 하는가”라며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난 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전남도 문화과에서는 녹우당 현장을 방문, 군 담당자가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점. 문화재청에 형상변경허가를 받지 않은 점 등을 낱낱이 들어 해남군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후문. 이와 함께 문화재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확인, 문화재전문가의 의견에 따를 것을 종용하면서 녹우당 현장에 실무자 파견을 검토 중이라고 전해진다.
녹우당의 종손인 윤형식 씨는 사태 해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극단적인 방안까지 내놓고 있다. “현재 녹우당의 국가지정문화재 해제 및 관련유물(국보+보물) 지정해제 요청, 유물전시관에 보관중인 문화재 모두 환수할 방침”이란다. 윤형식 종손은 “환수된 문화재는 녹우당문화사업회를 통해서 다시 전시하고 보존할 계획”이며, “이 건립은 전액 사재를 출연하여 진행될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사실 녹우당은 우리 해남이 보유한 위대한 역사문화 유산이다. 한국 시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조선조 최고의 직신(直臣)이신 고산 윤선도 선생의 정신을 올곧게 간직한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명문 종가들이 있긴 하지만, 해남의 고산유물관처럼 국보와 보물이 넘쳐나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한마디로 전국적 명소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 고장은 오늘의 시대에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시인을 배출한 살아 있는 문향(文鄕)이다. 이웃한 장흥이 작가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한강 등 걸출한 소설가의 고장이라면, 우리 해남은 민족시인 김남주와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고정희 시인 등을 배출한 시인의 고장이다.
공복의 참된 자세는 겸손을 잃지 않고 항상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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