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무형유산을 찾는 대장정     남강 정기봉 도예가(전남 제1호 공예명장)

▲ 정기봉 도예가는 고려 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산이 녹청자 재현에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전남 제1호 공예 명장이다.

철이 많은 산이면 황토만이 낼 수 있는 은은한 빛
1000여년 전 선조들의 기술 재현, 두렵지만 기쁨

 

11세기였던 고려시대,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떤 빛깔의 자기를 좋아했을까. 우린 12~13세기에 꽃을 피웠던 비색의 고려청자만 기억한다. 강진에서 생산된 상감기법의 고려청자.
고려시대 초인 11세기, 산이면 진산리 일대는 거대한 도자기 마을이었다. 산이면 도자기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83년 말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섬 앞 해저에서 무더기로 인양된 청자 때문이었다.
좌초된 배에서 발견된 3만여 점의 도자기의 출처는 산이면 진산리 일대 도요지였다.
도자학회는 처음 산이 녹청자를 놓고 불량품 또는 초기청자라 명명하며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산이 가마터의 발굴과 바다에서 인양된 청자로 인해 고려청자와는 확연히 다른 기법과 형태의 도자기가 산이면에 존재했음을, 그 기술이 강진청자에 뒤지지 않음을 알게 됐다.
강진의 고려청자 이전에 등장했던 산이 자기, 자기 빛이 녹색을 띠어 녹청자라 명명됐다.
이러한 산이 녹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기봉 도예가, 그가 주목받은 이유이다.

4대 도예가 집안 출신

그는 빛깔은 청자인 듯한데 표면은 거칠고 색은 녹빛인 자기를 고집한다. 고려청자와는 확연히 다른 자기, 정 작가는 옹기를 제작했던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청자 재현에 힘썼던 선친, 그리고 자신에 이어 그 뒤를 잇고 있는 아들, 도예 집안 출신이다.
그가 산이 녹청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산이 도요지 발굴로 녹청자가 빛을 보기 시작했던 1992년부터다. 당시 해남에선 우록 김봉호 선생과 행촌 김제현 선생 등을 중심으로 산이 녹청자 재현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정 작가에게 재현 임무를 맡겼다.
정 작가는 그림과 파편조각만을 가지고 산이 녹청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려 상감청자에 비해 이름조차도 생소한 녹청자 재현은 녹록지 않았다. 빛의 재현만이 아닌 1000여 년 전 선조들의 기술과 제작기법 등을 재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녹청자 연구에 깊이 들어갈수록 녹청자만이 갖는 매력과 가치를 그는 간파했다.
녹청자는 수비하지 않는 본래의 흙을 사용한다. 수비하지 않기에 표면이 거칠다. 수비하지 않는 흙으로 자기를 만든다는 것, 이는 산이면 일대의 흙이 그만큼 좋다는 의미이다.
그는 녹청자 특유의 매끄러운 빛과 은은한 색감이 차(茶) 색과 더 잘 어울린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를 재현하기 위해 산이면의 붉은 황토만을 고집했다.
투박하면서도 은은한 빛인 녹청자, 정 작가는 해남 일대 양질의 태토에서만 재현 가능한 빛이라고 말한다.

녹빛 찾아나선 30년

30여 년간의 노력, 1000여 년 전의 빛을 되살린 것은 5년 전이다.
평생 산이 녹청자 재현에 자신의 삶을 받치겠다는 정 작가는 2014년부터 매년 수천 개 팀이 참가하는 중국 경덕진 세계도자기 박람회에 산이 녹청자를 출품하고 있다. 중국 심천과 광저우에서 열리는 차 박람회에도 다기를 출품한다.
국제대회에 녹청자를 내놓는다는 것, 조심스럽고 겁도 났다. 그런데 수많은 중국 바이어들이 관심을 쏟아냈다. 청자와 백자의 색에 익숙한 중국인들 눈에 산이 녹청자 특유의 색이 신선함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정 작가, 그는 녹청자 자기 안쪽을 금가루를 섞어 만든 금빛 자기도 내놓았다. 그는 녹청자는 중국인에겐 굉장히 신비한 자기로 인식되기에 다양한 기법의 디자인만 가미하면 세계시장 진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릴 적 너무도 힘들어 가마를 때려 부수면서까지 거부했던 도공의 삶, 그런데 이젠 산이 녹청자를 잇겠다는 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다.
그는 산이 녹청자는 상감기법인 강진 고려청자에 비해 표면이 거칠어 박지기법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박지기법은 주로 표면이 거친 자기 전면에 넓게 그림을 그려 넣은 기법이다. 손이 많이 가는 힘든 작업이다.
정 작가는 기술이 발달된 현대에도 재현하기 힘든 기법을 1000여 년 전에 사용했다는 것이 놀랍다며 산이 녹청자를 재현할 때마다 옛 선조들의 기술과 미적 감각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연주용 철화장고 재현도 성공

정 작가는 산이면에서 출토된 철화장고에도 심취했다. 장고모양인 철화장고는 KBS-TV 진품명품에서 가장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 만큼 산이 진산리 자기 제작 수준의 결정체였다.
실제 장고크기와 똑같아 연주용으로 사용했을 철화장고는 산이면 진산 도요지에서 처음 생산됐다. 철화장고는 생활자기가 아닌 연주용 자기라서 발굴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정 작가는 산이면 황토는 너무 검지도 않고 너무 세지도 않는 적당한 양의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철화장고에서 느껴지는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의 빛 재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철화장고는 너무도 높고 고운 소리를 낸다며 자신이 만든 철화장고로 연주단을 만들 꿈도 가지고 있다. 
차갑지 않은 색, 인간의 미감에 가장 가까운 색이라는 녹청자, 정 작가는 산이 녹청자를 현대적 미감으로 되살리는 길에도 열심이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채색의 연리문 청자가 그것이다. 2004년 전국 도자기대회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한 연리문 청자는 산이면의 여러 색깔의 황토가 배합해 만들어낸 화려한 자기이다.
고려청자에서 느끼는 화려함과 비애의 맛과는 분명 다른 녹청자의 채색과 은은한 빛깔은 고려 초 사람들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정 작가는 이러한 취향은 산이 황토에서만 빚어낼 수 있는 색이라고 말한다.
당시 사람들의 미감과 산이 황토가 결합해 만들어낸 녹청자는 이제 정기봉 작가에 의해 전통이 살아있으면서도 현대인의 미감이 교차된 작품으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산이 녹청자 관광상품 꿈

정 작가는 산이 녹청자는 타 자기와 차별화시켜 해남의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향토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녹청자 5인 다기세트를 제9회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 출품해 특선을, 청자 다용도함은 창작분야에서 동상을 차지했다.
이어 2014년 전남도 첫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전남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공예명장제도를 도입한 후 첫 명장으로 도예가인 정기봉 작가와 목공예 분야 강병재 작가를 공예명장으로 선정했다.
공예명장 제도 도입은 남도미를 지닌 전통 공예기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공예분야 최고수준의 기능자와 공예기술 발전에 공헌한 자를 선정하는 제도다. 전남도의 공예명인은 선정이 까다로워 제1호 공예명장 이후 선정된 이가 없다.
정 작가는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청자공모전 대상 수상, 전남관광기념품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등 이미 녹청자 명인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또 아들 병민 씨와 함께 제44회 전남 공예품대전에서 대상과 입선을 나란히 수상했다. 각종 공예대전 수상과 함께 각종 초대전, 개인전 등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산이 녹청자의 우수성을 적극 알려온 그는 호남대학교 예술디자인학과 석사과정 논문을 통해 해남녹청자에 대한 학술적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녹청자 재현활동을 비롯해 전남 담양의 도립대학 겸임교수 및 전남대 대학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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