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국정을 쥐락펴락했다는 초유의 국정농단(國政壟斷) 사건으로 인해 국민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분출된 후로 저의 타임라인(timeline)도 변했습니다. 예전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몇 줄의 글을 쓰곤 했었는데 요즘은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며 특검의 조사 결과나 탄핵 관련 헌재의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살핍니다.
신문엔 보통 사람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파렴치한 묘수와 주장이 자주 등장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으련만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양심만 팽개쳐버리면 그 즉시 동물로 화해버릴 수 있다더니 본분과 위치를 이탈한 이들의 동물적인 위장술이 돋보입니다. 허나, 진실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지요.
삭일 수 없는 분노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곤 합니다. 어디 그런 분노가 저만의 것이겠습니까?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영하의 추위에서도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섬은 정제된 분노일 것입니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촛불 집회 현장에는 나가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지금도 가슴에 촛불 한 자루씩을 켜고 이렇게 외치고 있지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참 무겁고 슬픈 시절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2015년 3월, ‘News 1 news’에 실렸던 기사가 다시금 생각납니다.
「정의화 “세월호 참사, 대한민국 침몰할 수 있다는 시그널” 정의화 국회의장은 25일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 현상에 대한 적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당신들이 바뀌지 않고, 자각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간다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침몰할 수 있다는 시그널’ 그런 염려(念慮)가 기우(杞憂)에 그치길 바랐는데… 불운은 연거푸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처럼 정치가 침몰하고. 역사가 침몰하고, 도덕이 침몰하고, 서민 경제가 침몰하고, 청년들의 비전이 침몰하고, 노동자들의 삶이 망가지고… 온 나라가 상처투성이여서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듯합니다.
사실, 저들이 주창했던 국민 행복은 말 잔치였을 뿐, 처음부터 국민의 행복한 삶이나 국민의 안전과는 무관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국민의 생명이 희생된 몇 가지 사건의 대처 방법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 참담함에 기억조차 싫지만 300여 명의 생명들이 바다에 수장되어 가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故 백남기 님이 물대포에 맞아 죽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던가요? 국민의 권력을 위탁받은 그들에게 과연 국민은 무엇이었을까요? 세월호의 시계는 왜?, 누구를 위해 2014년 4월16일에 멈춰 있어야만 하며 진실은 잠겨있어야 할까요? 분명 뒤틀린 프레임(frame)입니다. 국민 주권이라는 가면을 쓴 미숙아들의 민낯입니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던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정치와 권력과 권력 주변의 가신들이 주범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앙드레 말로가 말했죠. ‘정치, 그것은 현대의 비극이다’고.
탄핵 정국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백성이 곧 국가이며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욕개미창(欲蓋彌彰)이라는 말처럼 진실은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나게 될 것이며 단언컨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매화 봉우리가 도톰해졌습니다.
곧 봄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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