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공화국, 해남유토피아』  윤재걸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출판물은 출간되기 전에 검열, 금서로 지정되는 시기가 있었다. 79년도에 나온 시집『후여후여목청갈아』와 85년에 나온『금지곡을 위하여』는 금서였다. 
따라서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 다락방에서 이불 꽁꽁 싸매고 봐야 하는 시집이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 올해 출간된 『유배공화국, 해남유토피아!』는 정권의 해악 없이 순산한 작품임을 짐작한다면 시인의 지난 문학적 생애도 퍽 고단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독자 입장에서 시인의 시집을 응시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불온의 시대에 시인이 아껴둔 낱말을 고이 전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민족의 통합, 서로 헤어진 동포/오순도순 함께 사는 한세상 큰소리로 부르지었을 뿐.//……//이 땅의 분단현실 남보다 조금 더 크게 통곡했을 뿐…/이 당의 민족통합 남보다 조금 더 크게 소리쳤을 뿐…//참 삶의 현장 먼저 달려가고/ 참삶의 가치 먼저 일깨웠을 따름//……//나는 이 시대가 강요하는 질문양식이 싫다!/친미는 우파, 반미는 좌파라는 이분법적 교조주의가 나는 싫다!//- 「너는 친미(親美)인가, 반미(反美)인가」중.

 윤재걸 시인은 1989년 6월에는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 특종취재 건’으로 안기부 및 공안 검찰로부터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6차례나 발부받았다. 시인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언론자유를 위한 취재원 보호’ 논리를 내세워 끝내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국가권력 기관으로부터 받아냈다. 2001년 4월에는 민주유공자와 민주상이자로도 인정받았다.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민주주의 식당에 진상을 부리던 손님들이 하나둘, 역사의 도마에 얹어지기는 했지만 무언가 속 시원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친미인가, 반미인가, 좌냐 우냐라는 교조주의는 낡은 질문 양식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오늘도 나직이 속삭인다. ‘두려움 없이 새 세상 기약하며/새 나라의 깃발 끝내 보겠네.// 고산(孤山)공화국 만세!/ 남주(南柱)공화국 만세!// 유배(流配)공화국 만세!/시인(時人)공화국 만세!// 「유배공화국(流配共和國), 해남 유토피아!」중. 
시인이 보는 공화의 의미는 제후의 국(國)과 의미가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은 왕이나 식자층이 통치하는 과거의 봉건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제국이다. 그것은 바다처럼 온 지상의 물을 받는 것처럼 넉넉하다. 서로가 한 몸 되는 수평 공화국이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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