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흔적 도로명주소
마을이름이 사라졌다

 

 

 “어디서 사세요?” 하고 물으면 도로명 주소가 나온다. 아무런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시멘트벽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어느 마을에 사시냐고요?” 
마을 이름을 말할 때야 상대방과 공감력이 생긴다. 그 공감력 때문에 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된다.
마을이란 공간적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각의 마을은 특정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고 그러한 각인은 나와 연관된 파편들과 함께 머리에 입력된다.  
그런데 어디서 사느냐고 물으면 모두 도로명 주소를 말한다. 과연 해남군민들 내에서 도로명 주소를 말하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정부가 밝힌 개헌안의 중심엔 지방분권이 자리한다. 지방분권이란 주민들의 자주권을 의미하며 이는 지역을 함께 일궈나가는 공동체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에는 공동체라는 개념자체가 없다. 
공동체는 일정 공간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공동체의 기초는 마을이다. 그런데 도로명 주소에는 마을이 없다. 지금은 우리의 머리에 각 마을이름이 학습돼 있지만 도로명 주소는 이를 잊게 한다. 
도로명 주소가 보편화되면 지금과 같은 마을이장제도도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마을이라는 이름자체가 없어지는데 마을을 대표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도로명 주소는 마을의 해체를 기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 및 문화와 함께했고 모든 이의 탄생과 성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편리성을 들어 미국식 도로명 주소를 시행했다. 결과는 복잡하게 펼쳐진 도로를 이름으로 취하다 보니 기존 마을이름보다 더 많은 도로명이 탄생해 버렸다. 
정권이 바뀌었다. 마을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도로명 주소를 그대로 따라야 할까. 
마을의 이름을 역사자료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를 맞이해야 할까. 
마을이름은 한 마을의 지형과 역사를 반영한다. 연꽃이 피었다고 해서 붙여진 해남읍 연동, 옛 5일시장이 섰던 마산면 육일시와 이일시, 그러한 마을이름들이 사라진다.
단순히 이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 아래서 함께 공유한 연대의식도 사라진다. 정부정책이고 수조원을 들여 추진된 사업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지만 도로명주소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마을 이장이라고 하면 한 마을이 떠오르지만 도로명 주소만을 쓸 경우 마을이 아닌 도로를 대표하는 이장이 된다.

 지방분권시대가 다가왔다. 예산도 입법권도 행정권도 주어진다. 자치권이 강화되는 지방정부 들어서도 도로명 주소를 따라야 할지, 도로명 주소에 마을이름을 곁들이는 정책전환은 어려운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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