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 학동 김남심 부녀회장
드로잉으로 배움의 갈증 해소 

 

 일평생 밭일과 논일을 하고, 채소를 시장에 팔았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노동의 공간이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운 터전이었다. 그러한 자연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깻잎이, 감나무 잎이, 오리를 촘촘히 감싼 깃털이 다시 보였다. 또 봄과 여름, 가을 따라 모양이 바뀌는 모든 식물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해남읍 학동리 김남심(68) 부녀회장이 도전한 드로잉, 행촌문화재단(이사장 김동국)이 학동에 지은 수윤미술관의 ‘거인의 정원 드로잉 클럽’에 참여하면서 접한 드로잉이다.
배운지 6개월밖에 안 된 드로잉이지만 정말로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다.
배움이 이렇게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고 삶이 풍족해진다는 사실도 소록소록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배움이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김 부녀회장은 19살 때 학동으로 시집와 50여 년간 농사를 짓고 채소를 해남읍에 내다 파는 억척 농사꾼의 길을 걸었다. 농사꾼의 길을 걸으면서도 학업에 대한 목마름은 평생 등에 멘 보따리처럼 여겨졌다. 그런 갈증을 드로잉에서 풀고 있다.
김 회장은 매주 1회 수윤미술관을 찾아 드로잉 작업을 한다. 드로잉 작업을 위해 밭에 있는 감도 꺾어오고 어린 깻대도 꺾어와 스케치북에 그린다. 
또 꿈에서 본 연꽃도 그려보고 숫자 ‘2’ 자를 두 번 그리면 완성된다는 오리도 그렸다. 
어린아이들의 그림처럼 원근법도 없고 사물마다의 크기도 없다. 나무 위에 사람을 그리는 아이처럼 연꽃이 연잎 아래에 있다. 그런데도 이승미 관장은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한다. 그 칭찬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수윤미술관의 거인의 정원 드로잉 클럽은 전문 미술가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림을 통해 삶을 치유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김 회장은 처음 손자와 함께 수윤미술관을 찾았다. 손자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요량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이승미 관장이 그림 한번 그려보라는 권유가 있어 연필을 잡았다. 평생 잡아보지 못한 연필, 그림이 그려질 리 만무했다. “무담시 왔는갑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관장의 격려의 말이 들려왔다. 괜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소리가 너무도 좋아 이젠 연필 잡은 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됐다.
6개월간 그린 김 회장의 작품은 액자에 담겨져, 스케치북에 담겨져 수윤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부화가 김순복 씨가 모델이 됐다. 김 회장은 웃으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벌써 김순복 농부화가가 다 그렸다”며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그림은 김 회장을 소녀적 감수성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젠 텃밭은 생계의 터전이면서도 감상의 대상이 됐다. 그 속에서 자른 풀 하나도 생김새를 들여다보며 모든 식물의 특징을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드로잉 시간. 무엇을 그리든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시간, 그림 그리는 재미가 있어 그림에 담을 사물이 마음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행복감도 맛보는 시간이다.
그가 잠시 호미를 밭에 살짝 떨궜을 때는 지금부터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신호이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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