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먹겠다고…헤엄쳐 바다 건넌 4학년 허준이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마라이!”
“그래, 알았어어~”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숨기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우리 분교 4학년 허준이, 선호, 경철이 이렇게 셋이서 자장면이 먹고 싶어 송지면 산정에 나갔답니다. 오랜만에 육지에 발을 디딘 아이들은 자장면도 먹고 게임방에도 가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써버린 후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려고 오후 3시부터 어란항을 서성거려도 어불도로 들어가는 배는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바다를 친구 삼아 자란 겁도 없는 아이들은 어불도까지 헤엄쳐 건너가기로 결정하고 수영에 자신이 있는 허준이가 먼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고 경철이와 선호는 스티로폼을 잡고 허준이를 뒤따랐답니다.
(어란과 어불도 사이는 직선거리로 900m 정도이며 비좁은 물의 길목으로 물살이 빠릅니다.)그날은 물살이 센 날인지라 경철이와 선호는 힘이 달려 도중에 돌아서고 말았는데 허준이는 혼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허준이 이야기를 첨가해보면.
“선생님, 어불도에 거의 왔거든요. 그런데 선호하고 경철이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바다 물살을 거슬러 700여 미터 정도 가니 눈앞에 모사테(어불도 모래밭의 명칭)가 보이더랍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장난기가 발동한 허준이, 친구들을 놀려주고 싶어 갑자기 손을 흔들며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본 선호와 경철이가 놀라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옷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고 때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육경(육지 경찰) 초소 근무병이 급히 경비정을 출동시켰다는 것입니다.  
경비정이 오는 사이 허준이는 유유자적 어불도에 닿았고 출동한 육경은 허준이의 상태를 점검한 후 집으로 돌려보냈답니다.
허준이는 요즈음은 수영 연습에 열중입니다.
바다를 건넌 사건이 있은 후 허준이를 수영선수로 키워내고 싶어 지역신문에 연락을 했고 그 후 ‘6시 내 고향’ 등 TV 방송에 ‘어불도 물개 소년’ ‘제2의 조오련’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이나 출연해 화제가 됐습니다. 덕분에 나도 몇 군데 방송에 얼굴을 선보였습니다. 마을에서도 허준이의 이야기가 발을 달고 돌아다닙니다. 
얼마 후, 허준이를 무안에 있는 전남체육중학교에 데리고 가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신체적 조건이 아주 좋다는 판정을 받았고 수영 감독님께서 체육중학교에 진학시키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체육중학교 합숙소에서 지내며 무상으로 지도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제 허준이는 수영 선수가 될 꿈을 꾸고 있습니다. 풀장 대신에 마을 인근 바다에서 수영 연습을 합니다.
허준이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허준이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바다에서 일하는 날이면 솔섬(어불도 앞에 있는 작은 섬) 부근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헤엄쳐 오곤 했답니다.
 허준이가 방송을 타고 체육중학교 합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허준이를 무척 부러워합니다. 바다를 건너려다가 중도에 포기한 선호와 경철이는 서운한 모양입니다.
“아따, 그때 우리도 바다를 건너올 것을”     
 

 

2003. 06. 02. 어불 분교에서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