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똥개 내놓을께…근디 장학사님이 여자라 했소?

김석천/전 교사

 

“근디 장학사님이 여자라제. 그 양반 술 좀 하시오?”
“우리 집 똥개 있재, 내가 그것 한 마리 내 놓으께”
“옴메, 그것만 갖고 으트께 한다요?”
“아따, 그라믄 학부모들한테 전복 쪼끔씩 주라고 그래에, 광철이 한테랑 철이 한테랑 연락해 봐. 그라고 자모 회장은 뭐 좀 준비하고”
“참 자모회 돈 있오 없소?”
“뭔 돈이 있겄소”
“그라믄 우선 자모회장 돈을 조끔 쓰랑께. 나중에 다같이 걷게”
어제 밤에는 고회장(작년 회장), 박회장(현회장), 자모회장이 학교에 찾아와 의논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학사님이 학부모들을 만나러 오는 것도 아닌데 장학사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인 것입니다.
“오메, 으뜨케 하까이~”
“염려 마세요. 배나 한번 빌려 주세요”
“배는 그렇게 해야지라우”
그리고 나온 이야기가 음식장만 이야기입니다.

장학사님이 오시는 날, 날이 꾸물거립니다.
아침부터 고회장이 누렁이를 끌고 교문을 들어섭니다. 허준이 아버지는 가마솥을 준비하고 자모회장은 허준이 엄마랑 보따리에 무엇을 싸 가지고 오는 등 영락없이 대사(大事)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소란스럽습니다. 
“아야야, 아그들아, 저기 경철이 아버지가 개 잡는다”
“어디야, 어디이~”
육지에선 장학사님이 오시는 날이면 오히려 조용하고 묵직한 분위기인데 이곳은 잔치 집 분위기니 섬마을 인심이 그렇습니다. 
고회장이 전화통을 들고 학부모님들을 독촉합니다.
“어이 광철이, 뭐하고 있는가? 쪼끔 있으먼 장학사님 오신께 전복 좀 가져 오랑께.”
“빨리 갖고 와이~”
학부모님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여객선이 결항중인지라, 허준이 아버지 배로 어란항으로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을 모시러 나갔습니다.
겨울 바닷바람이 유난히 차갑습니다. 더군다나 가려진 곳이 전혀 없는 사선을 타면 세찬 바람과 파도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배에 탄 두 분은 이런 배를 타본 경험이 없는지 불안한 모양입니다.
허준이 아버지 배가 포구에 닿고, 학교로 가는 해안도로를 걸어가는 동안 섬사람들은 이방인들의 도착에 몇 번이고 위아래를 쳐다봅니다.
“이 분은 장학사님 그리고 우리 본교 교장선생님입니다”
“아, 이 어르신은 우리 분교장 자원인사로 국악에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섬마을 어르신들은 자신을 잘 소개해줘서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아이고, 교장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장학사님, 처음 뵙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시작된 섬마을 학교의 정담은 깊어갑니다.
“인자 이곳에 오셨응께 우리가 배 안 태워주면 못가싱께 알아서 하시오”
“어야, 고기 다 익었능가? 빨리 가꼬 오랑께”
“이 전복 다 잡수시면 배 댈라요”
옷자락을 붙잡는 학부모들의 성화에 교장선생님도 장학사님도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어느 덧 섬마을 포구엔 가로등이 하나 둘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돌아가시는 길에 교장선생님께서 분교선생님들이 수고하신다는 정표(情表)를 건네줍니다.
어불도 섬마을은 이렇게 잔잔한 정으로 하루를 접습니다. 
그러나 섬마을 학부모님들의 술잔치는 언제나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2003. 06. 28. 어불분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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