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남녀 죽음 안타까워 가을이면 강강수월래
황산면 성산 앞바다 각시바위는 정분이 바위

▲ 황산면 성산리 바다가운데 있는 바위를 주민들은 각시바위라고 한다. 1년 중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 때만 얼굴을 살짝 내미는 것이 부끄러움 많이 타는 각시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27년,『별건곤』잡지에 실린 해남강강술래 기원 설화 

「달 밝았다. 개명 산천에 달 밝았다. 달 밝으면 오늘밤 싸움도 승전이네, 승전이라네 강강수월래!」「나는 좋네. 나는 좋아. 석달 열흘 기다려도 나는 좋네. 우리 님은 승전하여 오실테니 강강수월래」

가을 달빛 아래서 어여쁜 처녀각시들이 목 놓아 강강술래를 춘다, 갈매기와 뭉게구름 밖에 볼 것 없는 바닷가에 남녀 모두 앞다퉈 구경을 한다.
이때. 출렁출렁 바닷물 소리에 이상한 소리가 묻어온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돌아다니는 가을 바람소리도, 그렇다고 이 밤중에 사공의 뱃소리도 아니다. 한 노인이 먼 바다를 응시한다.  
「허, 이상하군, 이순신이 완도부근에서 크게 붙은 것 같은데」
「글쎄 오늘 밤엔 어느 바다서 싸우는지 아나?」
「들어보니 한산도 바다에는 딴 나라 배 수천척이 들이쳤는데 이곳엔 어느 때 들이칠지」
노인들이 주고받는 소리, 이곳에도 한산도 해전에 아버지나 형들이 참전한 이들이 많다. 
노인은 들리는 소리가 마치 서로 맞붙어 칼질하거나 창질하는 군사소리 같다며 동리마을로 들어가 나무 한 아름을 안고 와 모래 벌에 불을 피운다. 그리고 마을 장정들에게 긴 장대 하나씩 들고 색시들 모양으로 풀떡풀떡 뛰며 춤과 노래를 부르라 한다. 「네 죽으면 내가 있다. 내 죽으면 하늘 있다. 어서 싸워라 나랏일에 죽는 죽음엔 꽃이 핀단다. 강강수월래.」남자들의 노래도 후렴은 「강강수월래」다. 
노인의 말대로 척척 하는 것을 보니 오늘 저녁이 처음은 아닌 듯하다.
맨상투 바람의 사내들이 성큼성큼 뛰며 부르는 노래 소리가 파도와 섞인다.
노인은 다시 색시들을 시켜 춤을 추라한다. 남녀의 발길이 콩 튀듯 팥 튀듯 분주하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님 따라서 나는 간다. 바늘 가는데 실 안가랴, 열두 바다 건너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처녀 무리 속에 열여섯 살 봉녀(鳳女)도 끼어 있다. 옥색치마가 유달리 눈에 띄는 봉녀는 애타는 표정으로 자꾸 바다로 눈길을 보낸다. 
그러다 슬그머니 압장태(장대 = 충무리 비각)에 홀로 오르며 「간다간다 나는 간다. 님 따라서 나는 간다.」라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눈물 글썽이며「정남아! 정남아!」를 애타게 부른다.
바로 그때. 저쪽 완도 부근에서 냥냥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천년천년 사천년을 대대손손 자라왔네. 만년만년 사만년을 대대손손 지켜왔네 강강수월래!」「봄에 뵙든 부모처자 늙지 않고 잘게시나. 오늘밤에 승전하고 내일 날은 돌아가네. 강강수월래」 
소리와 함께 돌연히 나타난 많은 병선들이 위풍당당하게 너른 바다 한 복판에 나타났다. 
만고의 명장 이순신이 바다물이 깊어 싸우기에 좋은 이곳으로 오는 길이라. 섬 속에 숨어있던 모든 배들이 하나 둘 나타나 좌우에서 오는 것이다. 조금 전 모래 벌에서 노인이 들은 소리도 병사들이 노 저으며 부르는 군호였다.
이순신이 건곤일척의 대해전을 위해 경상도 바다로 나설 때 전라도나 경상도 바닷가 백성들도 앞다퉈 이순신 휘하로 들어갔다. 
그 중 다해도(多海島)의 젊은 청년 정남이도 있었다. 정남이는 아랫마을에 사는 봉녀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둘은 홍답따기에서 만난 뒤 1년 넘게 ‘네 죽으면 내 못살고 내 죽으면 네 못산다’며 사랑을 키웠다. 흔히 바닷가 청춘의 사랑은 물결같이 기운차고 바람같이 맹렬한 것으로 둘의 사랑도 하늘땅이 꺼지기 전에는 갈라질 법 없듯 갈수록 깊어갔다. 
정남은 조그마한 쪽배를 아침저녁으로 물아 아래 마을 봉녀를 찾아왔고 봉녀도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바닷가 참대 밭에서 정남이 배를 기다렸다.

「나는야 오늘부터 꽉지메고 가서 이 아래 산을 헐어 버릴란다.」
「어째서?」
「산만 없으면 네가 아침저녁 물 길러 가는 것을 볼 수 있잖냐」
「별 우스운 소리 다 하네. 그 큰 산을 어떻게 헐어?」
「석달 열흘만 파면 안되것냐?」
「그럼 나도 파마, 그래서 그 흙을 바다에 처넣자. 그러면 풍랑 치나 비가 오나 너는 뱃길이 아니라도 거저 올 수 있잫아」
그럴 때마다 정남이는 봉녀를 안으며 삼태성(三太星) 같이 변치말자고 약속했다. 

이리하야 봄이면 참대 밭을 거닐며 죽순을 따는 둘의 모습과 가을이면 바위 위 홍합 타는 둘의 그림자는 이 섬에 뺄 날이 없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터지자 정남이는 분연히 일어나 갑옷 입고 투구를 쓴 채 수군이 됐다. 나갈 때에 “봉녀야 나라가 없어봐라. 네나 내나 다 성명없고 사랑도 다 못한다. 싸움이 끝나면 대번에 달려오마, 오래가야 한 달을 넘겠냐? 부디 먼 바다로 가지 말고 기다려라”  
봉녀는 손꼽아 한 달을 기다렸다. 풍문에 한산도해전에서 공을 이루었다는 말도 들리고 좌수영에서 밤낮 파수보고 있다는 말도 들릴 뿐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동리 사람들은 어느 날 어느 시에 명량해협에도 난리판이 벌여질지 모른다며 그제부터 밤마다 바닷가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터였다.
봉녀는 행여나 오늘 밤은 승전하고 돌아오는 애인을 맞을까 하는 심정으로 암장태에 오른 것이다. 
병선이 구름같이 바다 한 복판에 모였을 때 그 많은 배에서「천년천년 사천년을 대대손손 자라왔네. 만년만년 사만년을 대대손손 지켜왔네, 강강수월래!」가 들려온다.
그런데 순간「강강수월래」소리가 뚝 그치고 와! 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달도 핏빛에 물든 듯 빨갛고 바닷물 빛도 선지피에 어리고, 물결에 수천명의 시체가 풀잎같이 몰려가고 오고한다. 
봉녀는 두 손 비비며, 만세를 부르고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을 더 높이 피우며 승전을 빌고 있다. 조선 땅에 솟은 어느 산이나 어느 섬이나 조선 땅을 싸돌고 있는 어느 파도나 승전을 빌지 않는 것이 있으랴. 
정남이는 살아있을까, 살아서 도망가는 적선을 추격하려 명량의 바다를 건너가고 있을까, 아, 벌써 배들이 뱃머리를 돌려 먼 바다로 나가려 한다. 아, 정남아. 지금가면 또 언제 오려나.  
봉녀는 검은 머리태 팅팅 감아올리고 풍덩 바다에 뛰어들더니 날새보다 떠 빠르게 배를 향해 헤엄쳐간다. 일편단심 앞에 만경창파가 두려우랴. 
그때 까만 구름장 하나가 바닷물을 가르며 이쪽으로 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아, 꿈에서도 잊지 못한 정남이다. 
정남이도 봉녀가 너무 보고 싶어 명량해전 승전 뒤 쉬는 틈을 타 천리물길을 마다않고 헤엄쳐 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은 꼭 껴안았다. 천지가 무너져도 떨어지는 일 없이 곡 껴안았다.
그런데 명량해협에 적군의 시체를 쓰려 내가려는 듯 큰 파도가 밀려왔다. 모든 배들은 일제히 우수영 바닷가로 피해갔고 둘의 그림자는 파도에 싸여 자취를 감췄다. 
이튿날 아침. 多海島의 바다 가에 허리와 허리를 머리태로 꽁꽁 묶은 시체가 밀려왔다. 그리고 多海島 앞바다에 바위 두 개가 솟아올랐다. 
동리 사람들은 그것을 부부암이라 이름 지었다. 또 봉녀바위, 정남바위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어느 어부가  “부부는 무슨 부부냐, 오누이라 하는 것이 맞다”며 형제암이라 했다. 그러자 그 이튿날 바위 하나가 물속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형제암이라는 말이 너무도 슬퍼 물속으로 들어가 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까지 바위 하나만 빼곡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것도 1년에 사리 때만 얼굴을 내민다. (황산면 성산마을 바다 가운데 있는 이 바위를 현재 마을사람들은 ‘각시바위’라 부른다) 
동리 사람들은 두 사람을 눈물로 장사 지내고 남녀노소 바닷가에 나와 그때 부른 강강수월래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퍼져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강강수월래 노래를 불렀다. 
「강강수월래」라는 뜻은 「强X隨月來」「强X水越來」라는 의미로 강한 적군이 달 따라, 바닷물을 건너 침범하니 동포야 나가 싸우자 하는 뜻으로 이순신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아, 난중에 피었던 봉녀와 정남이 꽃은 애처롭게 수중고혼이 된지 오래건만 이 노래와 춤은 아직도 가슴을 흔들어 마지않는다. 봉녀야, 저 가을 하늘 울고 지나는 외기러기 소리 듣느냐, 정남아, 너도 섬 속 참대 밭에 흔자 드나드는 머슴애의 애틋한 저 옥통소 소리를 듣느냐, 올해도 가을이 왔다. 우수영 명량 바다에, 수만 고혼이 오는 그 가을이 왔다. 봉녀야! 봉녀야! 혼이라도 하늘에 떠 있거든 대답이나 하렴?

이 설화는 잡지 「별건곤」제9호, 1927년 10월1일에 실린 내응으로 기사제목은 팔도전승순례, 해녀와 용사의 부부암, 임진란 우수영 대해전 때에 죽은 「강강수월래」의 화신인 두 방혼(꽃다운 넋이란 뜻)이다.     
당시 김동환 기자는 우수영에 구전되는 강강술래와 전설을 기행문 형식으로 채록했는데 지금의 강강술래 가사와 많이 다르다. 또 강강술래를 명량대첩의 승전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고 강강술래가 아닌 ‘강강수월래(强强隨月來, 强强水越來)’로 ‘강한 적군이 달 따라 또는 바다를 건너 침범하니 나가 싸우자’이다. 또 강강술래가 우수영에서 발원해 영남까지 유행하게 된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번 기사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변남주 교수가 발견해 전해준 잡지 내용을 간추려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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