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어불도는 자그마한 섬입니다. 어란에서 배를 타면 10분여 걸리는 섬이지만 뱃길이 끊기면 섬은 바다에 갇히고 맙니다.
이곳엔 차(車)가 없는 섬, 편의시설이라야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을 뿐인 곳입니다. 
이곳에 때 묻지 않은 14명의 아이들과 세 분의 선생님이 마치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바다로 나가는 이른 시각에 맞춰 아이들이 교문을 들어설 때 학교는 숨을 쉬고 교사는 비로소 교사가 됩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엔 학교 뒤편 목넘에서 단애(斷崖)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친구가 되고 밤이면 다시 학교를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삽니다. 
섬 아이들이 매일 접하며 살아가는 것은 바람과 파도와 삶을 싣고 오가는 배입니다. 육지 아이들이야 초고속 인터넷, 게임방, 다양한 놀이시설, 학원 과외 등 문화적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세상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겐 오직 학교가 공부터요, 놀이터이며 게임방이요 정보방입니다. 밤이면 속도는 느리지만 전화와 위성을 연결해 접속되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모여들고 학교는 야학을 시작합니다.
주말에는 육지에 나가 바깥 구경을 하고 게임 방에 들르는 것이 한 주간 동안의 아이들의 꿈입니다. 요즘엔 도선이 끊겨 게임방마저도 갈 수 없는 처지입니다. 
바다는 아이들을 가두어 섬 아이들로 만들었습니다. 대도시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 기차를 타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바다를 젖줄로 삼고 살아가는 부모네들은 삶에 쫒겨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금강산에 다녀올 때의 일입니다. 휴게소에서 공중전화 카드를 내어주며 집에 전화를 하도록 했습니다. 한참 후에 달려온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 “선생님 전화가 안 돼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전화를 걸었니?”
“옴메, 우리가 전화도 못 거는 줄 아세요? 집에서처럼 전화통을 들고 정확히 전화번호를 눌러도 전화가 걸리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지역을 벗어나 전화를 하려면 지역 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공중전화를 사용한 경험이 없었으니까요.) 
“너희 집 전화번호를 누르기 전에 061을 먼저 누른 다음 전화를 해 보거라.”
“이제 되네요. 이상하네.”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기에 상식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조차도 세세히 설명해 줘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교사 스스로 설명의 한계가 있음을 고민하곤 합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바다와 파도와 바람이 친구입니다. 저 멀리 송호리 가는 길을 따라 버스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어불도 아이들은 섬 아이들로 살아갑니다.
어불도는 내가 사랑하는 섬입니다. 저는 이곳 아이들을 사랑하고 섬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슬로건을 걸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동안은 도지사적(島知事的)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폭넓은 경험을 제공하며 학교와 마을 홈페이지를 만들어 어불도를 알리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학교를 꾸며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꿉니다.
그것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아포리즘을 품고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어불도 막배가 하얀 물꼬리를 남기고 육지를 향합니다.
         
        2003. 05. 03.  어불분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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