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순·김성례 할머니 입학
마산초등학교 용전분교  

▲ 신입생 4명 중 여자 2명이 할머니인 용전분교, 신입생으로 학교에 첫 발을 내딛은 마정순 할머니는 80세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공부를 한다.

 “자자, 27쪽 보세요. 그림이 뭘까요?”
“지우개요.”
서준이가 얼른 대답을 한다. 
“그럼 지우개는 어떻게 쓸까요? 점선을 따라 지우개를 써보세요.”
복식수업으로 1·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임철우 교사가 칠판에 글씨 쓰는 순서 시범을 보인다. 마정순(88) 할머니가 돋보기를 꺼내 따라 쓴다. 동급생인 1학년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우고 와서 곧잘 따라한다. 선행학습에 따른 실력 차이가 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음악 시간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마산초등학교 용전분교의 올해 신입생은 총 4명, 남학생 2명에 여학생 2명이다. 그런데 여학생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마정순 할머니(88)와 김성례(68)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중 마정순 할머니는 남학생 2명과 80년 차이가 난다. 
“우리 때는 부잣집 딸들도 학교 못 댕겼어. 열여덟에 시집왔는데 그때 동네서 야학을 했어. 근데 남편이 못 댕기게 해서 못 갔제. 시누이는 스물세 살인데도 야학을 다녔거든,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
“불편한 것이요? 한도 없제. 근디 버스 타기가 젤 에뢌제. 포도시 우리집으로 오는 ‘상공리’만 외워갖고 차를 탔는디. 글씨 상공리 버스가 없어지고 난 게 차를 탈 수가 있어야제. 남들한테는 창피해서 글 모른단 소리를 할 수가 없어 눈이 침침하다고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고 탔제.”
할머니는 버스 행선지 표시를 읽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걸 큰소리로 읽을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도 했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 그렇게 까막눈으로 70년을 살았다.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 그릴  수 있는 것은 ‘마정순’이라는 자신의 이름뿐이었다. 용전리에서 솔등슈퍼를 운영해왔는데, 남편이 타계한 뒤로는 장부를 적을 수 없어 외상 사절이라고 붙여 놓았다. 시골에서는 외상을 달아놓고 한꺼번에 갚는 것이 일상인데, 사람들로부터 애먼 욕도 먹어야 했다. 
지난해 11월 용전분교 새날문화축제 때였다. 할머니의 87년 한을 전해들은 용전분교 교사들이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본교인 마산초 교장과 협의를 했고, 결국 올해 신입생의 꿈을 이루게 됐다. 이때 김성례(68) 할머니의 소식도 들려왔다. 이병옥 교장은 가정방문을 한 뒤 김 할머니의 입학도 함께 추진했다. 김 할머니는 암수술을 세 번이나 했었는데 병원에 가느라 입학식 이후 수업에는 결석을 하고 있다. 
마정순 할머니는 8시10분에 집을 나선다. 이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단다. 학교에는 8시30분에 도착하는데, 해남읍에서 오는 담임선생님이 태워주기도 하고, 귀농한 아들 김용국(68)씨가 태워다 주기도 한다. 솔등슈퍼에서부터 등굣길이 무릎수술을 했던 할머니가 걷기에는 멀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급식실로 향하는 할머니는 영락없는 학생이었다. 전교생 17명 사이에 당당히 학생으로 끼어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았다. 마주앉은 동급생 수홍이, 서준이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는 노인당에 가서 노는 것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한글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뿌듯하고 맘이 설렌단다. 5~60년 전 5남매가 다니던 그 길을 따라 늦깎이 학생이 돼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이젠 자식들의 동문이 됐고 후배가 됐다. 
60년을 운영했던 솔등슈퍼는 서울에서 귀농해온 아들이 맡기로 해 할머니의 등굣길이 더욱 가벼워졌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마정순 할머니는 큰 바람은 없다고 말했다. 자꾸 선생님의 말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버리지만 선생님이랑 하는 수업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또 아직 귀와 눈이 성해 공부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임철우 담임교사는 할머니가 의지가 있어 원을 풀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할머니의 늦깎이 입학에 지역 사회도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박문재 마산면장은 입학식에 참석해 만학의 두 할머니에게 입학 축하 선물로 가방과 학용품을 전달했다. 많은 언론사와 방송국이 다녀갔다. 
이병옥 교장은 할머니가 문자를 해득하게 되면 학업성적위원회를 열고 월반을 시켜 한 3년 정도에 졸업을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농해온 큰아들 김용국씨는 이제 글자 배워 어디에 쓸 거냐고, 다니다 아픈 다리라도 다치면 어쩔 거냐고 처음엔 반대했다. 그러나 한글을 배우겠다는 어머니의 열망과 한을 이해하고 적극 후원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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