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병 역사공원
북평 주민들 유치 움직임

▲ 북평면 주민들은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일 날 이진마을에서 만세운동을 펼치며 이진이 호남대표 항일마을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전라남도가 호남 의병들의 구국충혼을 기리기 위한 전국 규모의 ‘호남의병 역사공원’을 조성키로 한 가운데 북평면이 이를 유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북평면은 오는 5월1일 군민의 날에 호남의병 역사공원 유치를 희망하는 현수막을 걸고 북평면의 항일정신을 알릴 계획이다.
북평면이 호남의병 역사공원 유치에 나선 것은 시대가 가장 엄혹했을 때 끝까지 항전했던 곳이 북평면 이진이었기 때문이다. 
1909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한말 마지막 의병투쟁의 중심지도 해남 북평면이었다. 조선군대의 해산으로 촉발된 의병투쟁 때 북평면 일대에서도 의병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는데 의병장은 북평 이진출신 황두일이었다. 황두일 의병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북평 의병들은 대흥사 심적암 전투를 기점으로 죽임을 당하지만 그들은 한말 마지막 의병투쟁을 장식했던 인물들이었다. 
1933년 북평면 이진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은 호남 최대 항일운동조직체였다.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일본의 가혹한 탄압으로 많은 인사들이 친일로 돌아서거나 지하로 숨어드는 등 항일운동이 주춤했던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본유학파이자 북평 이진출신인 김홍배를 중심으로 결성된 전남운동협의회는 전남 11개 군에 걸쳐 조직이 결성됐을 만큼 방대했다. 
또 방대한 항일조직이 1년이 넘도록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조직이 치밀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조선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하며 이 사건을 알렸다.
북평면 자치회 노명석 위원장은 조선이 숨죽이고 있을 때, 독립의 희망을 일깨워준 곳이 북평면 이진이고 가장 엄혹한 시절에 끝까지 항전했던 곳이 북평면이었다고 말했다. 또 작은 항구마을인 이진마을이 보여준 항일정신은 호남인의 불굴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호남의병 역사공원’이 땅끝 길목인 북평면에 들어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남도는 올해 1억 원을 들여 ‘호남의병 역사공원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연내에 마무리하고, 2020년 실시설계에 이어 시군 공모를 통해 장소를 선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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