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산불진화 나선 해남 소방관들
편의점 초코파이 응원에 피로가 풀렸다 

▲ 해남·진도·완도 관할 소방관들은 종일 화재작업으로 인한 허기도 달래지 못한 채 다시 9시간을 달려 고성 산불 진화에 나섰다. (사진제공 해남소방서)

 해남소방서 박경용 센터장의 4월4일은 특별한 날이다.
그날은 새벽부터 유난히 많은 화재가 발생했다. 완도 축사화재를 시작으로 현산 산불, 마산 축사 화재, 북평 산불 진화 작업까지 끝내고 귀가한 시간은 밤 12시.
온종일 이어지는 고된 화재 진압에 배가 잔뜩 곯을 법도 한데 입맛이 통 없는 하루였다.
눈코 뜰 새 없이 이어지는 강행군에 점심, 저녁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물로 허기를 달랬다.
더욱이 이날 오후에는 강원도 고성과 속초 산불로 인해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 날이기도 했다. 새벽 3시, 대기조로 소방서에 머물러 있을 때 뉴스에서는 고성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참담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미 10시경 소방청에서는 고성 산불을 대응 최고 수준인 대응 3단계로 끌어 올렸기에 더욱 촉각이 곤두섰다. 대응 1단계는 국지적 상태, 2단계는 시·도경계를 넘는 범위, 3단계는 전국적 수준의 사고일 때 발령되며 세월호 이후 개편한 안전 대응 단계의 최고 수준이었다.  
박 센터장을 비롯한 안재용 소방사, 진도 소방장 정인화, 완도 소방위 남정일, 고금 소방교 정의성, 송지 박정일 소방위 등 6명의 소방관들이 강원도 산불 진화에 지원하고 나섰다. 
온종일 이어진 화마와의 전쟁, 하지만 국가적 재난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초속 35m에 달하는 강풍, 습도 20% 내외의 메마른 건초, 소방헬기 띄우는 게 불가능한 야간이라는 3대 악재가 겹치면서 순식간에 속초시내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잔불이 남는다. 이 잔불은 바람을 타고 또 다른 화재를 불러온다. 그래서 박 센터장은 최소 3~4일은 밤낮으로 화재 진압에 매달려야 한다는 각오로 소방차에 올랐다. 새벽 4시, 완도와 송지, 고금도에서 달려온 소방대원 4명과 함께 2대의 소방차에 각각 몸을 실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580km를 달려 9시간이 지난 12시경, 속초 경동대학교 지원대기소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도착하기 전 강풍이 멈추고 소방헬기가 활동할 수 있어 주불이 잡힌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산불은 530ha에 달하는 산림과 1,000여 곳의 주택과 시설물을 집어삼킨 후 여기저기 잔불을 토해내고 있었다. 
해남에서 출발한 6명의 소방관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주택과 창고의 잔불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 27년 경력의 박 센터장도 난생처음 마주한 초대형 화재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고 그 규모가 너무도 방대했다. 이미 전국에서 모인 소방관들이 방어선을 구축하며 어둠과 불길이라는 두 가지 위험과 밤새 싸웠다. 비록 먼 길을 달려와 현장 투입은 늦었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불길을 잡았다. 그렇게 또 9시간 흐른 뒤, 대응 2단계로 상황이 호전되면서 해남에서 출발한 6명의 소방관은 그제야 숙소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해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인력의 공백으로 힘이 들 해남센터의 동료 대원들을 위해서 출발을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강원도 화재 현장을 벗어나 30분을 달릴 때쯤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편의점에 멈췄다. 편의점 직원이 초코파이 2상자를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풀릴 것 같지 않았던 몸에 박힌 깊은 피로, 그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보낸 건 수줍게 건네준 초코파이 상자였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