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아마도 올해는 해남관광을 다시 시작하는 해가 되는 듯하다. 전라남도에서는 전남관광 원년을 선포하고 해남군에서도 관광재단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 행촌문화재단의 전통문화체험관광 프로그램인 ‘남도수묵 투어’도 입소문이 나 예술가들 내에서 이미 해남파가 결성돼있을 정도다. 7월에 있을 해남출신 가수 하림과의 1박2일 투어도 참가자 모집에 돌입했다. 이러한 상황이 전남과 해남관광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여행은 각자의 현실 혹은 각자의 일상을 잠시 접고 다른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지만 사실 단순하게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이다. 유럽이나 아시아 배낭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종종 그 딜레마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젊음을 앞세워 호기롭게 직장도 그만두기도 하고, 적금을 깨서 떠난 일생일대의 여행이건만 정작 비싼 관람료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박물관 입장을 포기하기도 하고, 멋진 호텔과 명품은 눈 구경만 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은 입맛만 다시기 일쑤다. 오리엔탈 특급열차를 타고 밤새 지나치는 아름다운 스위스 마을은 쪽잠으로 지나치거나 먼 하늘의 별처럼 불빛으로만 남아있다.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왔는가….’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도 젊음 때문에 후일을 기약한 빛나는 날들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나 숙제하듯 찍고 다닌 미술관 박물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선명하건만 지친여행자를 쉬어가게 한 호텔도 맛집도 기억에 남은 것은 없다. 

 3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내게 풍류로 가득 찬 해남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잘지 무엇을 보아야 할지 묻는다. 아마도 남도수묵기행을 수년간 운영했기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된다. 해남은 하늘과 땅, 남도가락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멋진 구릉과 넓은 들이 볼 것이라고 말해준다. 해남의 그 넓은 들과 하늘과 바람, 별빛이 세계유산 대흥사도 있게 하고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절 미황사도 만들고, 600년을 이어온 녹우당이 들어서고,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한 것이 아닌가. 해남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다는 고천암에 같이 가주면 누구나 넋을 잃는다.  
여행자들이 ‘전주비빔밥’과 같은 해남의 대표음식을 기대하면 이야기가 더욱 장황해진다. 비빔밥은 말하자면 해장국이나 장터국수처럼 국산 패스트푸드에 다름 아니다. 먹을 것 천국인 해남에서는 제철음식이 해남 대표음식이다.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 식당마다 제철음식만을 취급하는 곳이 많은 이유다. 수묵기행 여행자들에게 떡 벌어진 남도한상을 소개하면 대만족이다. 연신 사진 찍고 감동하며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심 아쉬움이 더 많다. 봄이면 찰진 우수영 숭어와 마주 앉은 사람끼리 낄낄대며 먹는 한입 가득 먹물로 까매지는 구수한 갑오징어와 새콤달콤한 초무침, 제철 신선한 양파와 곁들여 먹어야 제맛인 한여름 갯장어, 추석 무렵의 꽃낙지, 막 지은 향긋하고 뜨끈한 돌솥밥을 담백한 김과 묵은 김치와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른 양념에 싸서먹어야 하는 참치회는 해남사람들이 다 먹어버려서 도시로 보낼 게 없다고 말해준다. 관광을 염두에 둔 분들이 연중 표준화된 ‘전주비빔밥’ 같은 대표음식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주 사는 분들이 손님들에게 일 년 내내 비빔밥을 소개하고 대접하겠는가? 물론 대흥사 길 닭요리 촌처럼 번쩍 들어 서울로 가져가고 싶다는 닭 코스요리와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한 한정식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남의 대표음식은 식당마다 조금씩 레시피가 다른 손맛이 느껴지는 제철요리이다. 
앞으로는 해남의 맛집은 어딘가를 묻는 우문에 해남의 대표음식은 어디나 레시피가 조금씩 다른 제철 음식이다 라고 현답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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