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
고려초 철화청자 시대도 해남서 열어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해남청자를 품고 있는 난파선이 재현돼 있다.

 강진청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녹청자로 명명됐던 해남청자, 1,000년의 역사를 훌쩍 넘긴 지금에 이르러 당당히 해남청자라는 이름을 얻고 미적 가치도 인정받으며 후세와 만났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귀영)가 마련한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이 지난 8일 개막됐다. 전시회는 오는 10월13일까지다.
고려시대 초기인 10~13세기, 화원면과 산이면은 200여 기의 가마가 존재했던 전국 최대 규모의 청자생산지였다. 워낙 생산규모가 방대해 해남청자만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던 청자운반선도 따로 있었다. 

 1983년 물살이 센 완도군 어두리에서 고려시대 난파선이 인양됐다. 놀랍게도 난파선에는 3만여 점의 청자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모두 해남에서 생산된 청자였다. 2003년 군산 십이동파도에서도 청자운반선이 발굴됐다. 이중 청자 8,122점이 나왔는데 해남청자였다. 
태안 마도에선 4척의 난파선이 발굴됐는데 그중 1호선에선 죽산현(현 산이면과 마산면) 사람이 개경에 있는 관료에게 세금으로 거둔 곡식과 특산품을 보낸다는 글이 적힌 죽간이 발견됐다. 
영광 낙월도와 명량해로 등에서도 해남에서 생산됐을 가능성이 높은 청자가 인양됐다.
전국 대부분의 박물관에는 해남청자가 전시돼 있다. 해남청자로 확실히 밝혀진 것은 4만여 점, 생산지를 알 수 없지만 해남청자와 유사한 청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특히 산이면 진산 일대에서 생산된 철화청자는 전국의 사찰과 고분․ 가옥․ 제사유적에서 발굴될 만큼 당시 가장 아름다운 청자로 이름을 날렸다.

 철화청자는 강진 상감청자가 나오기 전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였고 강진청자의 귀족적이고 차가운 느낌에 비해  따뜻하고 서민적인 느낌으로 오늘날의 미적 감각과도 통한다.
특히 해남의 철화청자 제작기술은 전국의 도요지로 전파돼 고려 초기 철화청자 시대를 열었다. 
특별전에선 해남청자를 가득안고 바다 속에 가라앉은 군산 십이동파도 난파선도 만날 수 있다. 또 전국에서 발굴된 해남철화청자 유형도 전시돼 있어 해남의 청자가 전국으로 전파된 경로를 볼 수 있다. 

 한편 해남청자 특별전에 참가한 명현관 군수는 해남청자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측에 감사함을 전했다. 해남청자를 재현하고 있는 정기봉 작가도 이날 개막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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