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심적암 발굴보고회
건물 3동, 문지, 우물 확인

▲ 50일 동안의 발굴 조사 끝에 대흥사 심적암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말마지막 의병투쟁장소이자 일제에 의해 전소된 대흥사 심적암이 1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10월29일 대흥사 심적암지에 대한 발굴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4월17일부터 50여 일 간 심적암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발굴결과 건물지 3동과 문지 1곳, 우물지 1기가 확인됐다. 2동의 건물지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사용한 것이고 1동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사용한 곳으로 조사됐다. 유물은 조선시대 평기와가, 건물 기단부에선 18세기 백자편이 출토됐다.
발굴 조사를 마친 현장에는 구들과 아궁이, 기둥을 세웠던 기초석이 드러나 있다.
심적암 복원은 해남항일독립운동 추모사업회 오길록 회장이 지난해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 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해 진행되게 됐다.
한편 심적암은 1909년 일본군에 의해 전소된 후 110년간 흙과 잡목에 묻혀 빈터로 남아 있었다. 당시 완도와 해남 등 서남해안에서 활동하던 한말 의병들은 1909년 7월8일 연합부대를 만들어 최후 거점지로 심적암을 택했다. 의병연합부대장은 완도로 유배 온 황준성이었으며, 해남에서 활동하던 소부대 의병장인 황두일과 강성택, 추기엽도 함께였다. 하지만 7월9일 새벽 4시 일본군의 급습으로 심적암 스님 5명을 포함해 의병 2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8명이 포로로 잡힌 후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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