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옥 열(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많이 줄었지만, 어느 고을에 고시 합격자가 나오면 온 천지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합격자라도 나오면 축하물결이 난리도 아니었다. 누구네 아들이 어찌어찌했다고. 지금은 취업난을 반영하듯 하위직 공무원 합격도 플래카드가 걸리는 걸 봤다. ‘김서방네 아들 9급공무원 합격’. 참 웃기는 풍속도다. 아니, 옆 면 김씨 아들 고시 합격이 모두 나서 축하할 일일까? 학교동문 누가 사법고시를 패스하면 동문들에게 무슨 혜택이 있을까? 어느 술자리에서 “나도 검사친구 있어야!”라는 허허로운 자랑 한마디 외에 동문들한테 무슨 이득이 돌아갈까? 저 혼자 잘나가고 국회의원도 출마하고 그뿐!
그러나 우린, 그 김씨 일을 우리 일이라 생각했고, 내 일처럼 기뻐했다. 선거는 더했다. 집안대결을 넘어 학교 동문, 지역대결까지 참으로 열정적으로 함께 싸웠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정당들의 지역구 후보경선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많았다. 예비후보들은 사활이 걸린 탓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다 동원했다. 혈연은 물론 이려니와 동문회, 향우회까지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그러다 보니 자기 고향 후보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마치 군세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 
심하게 말하면 나하고는 ‘구정물’ 한 방울 안 튀긴 사이지만, 우리지역 출신이니까, 우리 동문이니까 찍어주고 밀어주자고. 과연 우리는 그렇게 찍은 후보에게 무슨 덕을 보겠다는 건지? 
교과서에 나온 대로라면,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란다. 가장 신성한 것이 주권행사이고 그래서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고 배운 게 투표행위다.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내 고향, 내 동문, 내 집안이면 묻지 않고 찍었고, 선거라는 것을 해본 지 한 세기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따지지 않고 찍었다. 결과는 4년 내내 늘 실망과 욕지거리하기에 바빴지만….
총선이나 대선투표는 특히 바람 타고 날아다니는 성격이 강했다. 우리 편이 이겨야 하고, 그래서 거두절미 같은 정당만 내리찍는 행위도 비슷하다. 물론 강한 지역단위 바람의 정치적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고, 시대상황 따라 일견 수긍이 갈 만한 점도 있지만, 선거가 어때야 한다는 원칙론에 입각해보면 웃기지도 않는 게 우리네 선거다. 
인물과 정책을 보고, 적합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명제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한때는 학연으로 찍고, 고무신으로 찍고, 바람에 찍고, 분노에 찍고…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제대로 된 선거를 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 선거라는 제도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치더라도 우리 과거 선거들은 ‘제대로 된 선거’가 드물었다. 
27일로 제21대 총선거 후보등록도 끝났다. 본격 레이스다. 우린 또 선택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 활동도 자유롭지 않으니 차분히 앉아서 후보 면면 공부 제대로 하고 제대로 투표해보자고. 
뽑아놓고 스스로 좀 덜 부끄럽게 만들 후보, 배지만 달면 거들먹거리지 않을, 유권자를 똥 친 막대기 취급하지 않을 후보 한 번 제대로 가려보면 어떨까? 그 사람 걸어온 길 차분히 훑어보고 정말 국회의원감인지, 군수용 공약을 걸었는지, 국회의원다운 공약을 걸었는지, 말이 되는 공약을 걸었는지 제대로 살펴보고 찍으면 어떨까? 특정 정당이면 무조건 찍는 선거 말고, 진짜 부끄러운 짓 안 한 능력 있는 후보, 쭉정이 말고 알곡 한 번 골라보는 수고를 해보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 드린다. 
그 사람 된다고 우리 집 형편 피는 것 아니라는 사실 명심하고, 고민해서 제대로 한번 찍어보자. 코로나 덕분에 좋은 선거 한번 해보자.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