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食慾), 수욕(睡慾), 성욕(性慾)을 인간의 3대 욕구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시옷(ㅅ)으로 시작된다. 식욕이든 성욕이든 그 자체를 두고 선하다, 악하다 또는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과도한 식욕과 성욕에 집착하다 보면 짐승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식색(食色, 먹고 싸는 일)을 사회학적 용어로 바꾸면 부귀영화(富貴榮華)라고 점잖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속성의 단면을 나타낸 말이다. 색(色)이라는 한자어는 뱀(巳)두 마리가 서로 엉켜 교미(交尾)를 하는 모습을 상형화한 글자이다. 그러니 색이라는 글자는 한자문화권에서는 ‘이성(異性)을 밝히다 또는 색을 밝히다’는 뜻으로 음탕한 사람을 두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식색문화는 그야말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야만적인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보기가 되는 셈이다.
절기상 초복이 지나고 대서다. 중복과 말복을 앞두고 해마다 연례적으로 견공(犬公)들의 수난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사람들과 가장 비슷하게 먹고 자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위해 복날 희생양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견공들의 운명이 애처롭기만 하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몸에 좋다 하면 뭐든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성도 없다. 온갖 야생동물에 천연기념물까지 밀렵을 해서 잡아먹는 잡식(雜食) 민족이다. 몸의 건강을 회복하고 기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먹지만 정력에 좋다고 하니 물불을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식성을 누가 막으랴. 맘껏 먹어서(食) 정력(色)으로 싸는 여름철 식색문화를 단지 민족성이나 기질론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미국 서부,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애리조나 주에 소재한 ‘그랜드 캐년(大峽谷)’을 가는 길에 잠깐 휴게소에 들렀다. 마침 옆에 세워 둔 밴에서 검고 토실한 개 한 마리가 내렸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폭염에 지친 개가 먹도록 얼음이 담긴 물통을 입에 갖다 대주었다. 그래도 개는 주인의 정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딴청만 피우면서 주인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개를 친구나 가족 이상의 상전처럼 모시는 서방 세계에서 개를 잡아먹는 보신문화를 야만스럽다고 개탄도 하지만, 정작 그 나라가 자행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전쟁과 살상, 폭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는 끔찍이도 사랑하고 아끼면서 약소국의 국민 수 십만 정도는 최첨단 대량살상무기로 학살하고도 세계평화의 파수꾼이라고 자처하는 그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그 개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잠잠해질 만하면 터지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성희롱, 성추문 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대통령 이명박과 사돈지간인 강용석이 내뱉은 그간의 성희롱 발언을 새삼스럽게 언론이 물 만난 고기처럼 아무리 떠들어봐야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아니 한나라당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전력이 있어야 당선된다는 속설이 난무할 정도이다. 당에서 제명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41살의 창창한 정치인, 그것도 소망교회 장로 대통령 이명박이 밀어주고 있는 한 팔팔한 그가 순순히 물러날 기세는 없어 보인다. 이름 없는 서민이 성폭행하면 온 국민이 잡아 죽여야한다고 게거품을 물면서도, 유독 권력자들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고 유순한 우리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태도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언제까지 먹고 싸기만 하는 식색(食色)의 야만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성숙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아본다. 아! 그래도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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