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했을 때 힘이 돼준 딸아 -김운용(풍농원)
2010-02-22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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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네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넌 훌쩍 커서 아빠 옆에 연인처럼 서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이제는 그래도 지나온 날들 돌아보며 말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구나. 아빠는 한때 큰 꿈을 가슴에 품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그곳이 불구덩이인줄도 모르고 불을 좇는 부나비처럼 휩쓸렸지. 선거판에 처음 뛰어든 아빠는 정말 순진한 놈이었지. 그러나 될 것 같다는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만 갔다. 잘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더 힘이 솟아올랐고, 미온적이었던 엄마도 적극적으로 손을 걷어붙였지.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로또를 사놓고 기다리는 1주일의 행복에 지나지 않았다. 온몸의 열정과 에너지를 다 토해내고도, 그 도전이 끝내 실패로 끝났을 때의 아빠의 좌절을 중학생이었던 너는 옆에서 눈물로 지켜보아야만 했지.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어린 네가 그때 아빠에게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었겠니.
사랑하는 내 딸아, 그때는 그랬어. 분노와 좌절은 술을 부르고, 다시 그 술은 분노와 좌절을 증폭시켜 아빠를 폐인이 되다시피 하게 했지. 네가 울먹이며 “아빠 그래도 사랑해!”라고 했을 때에야 아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내 몸이 나 하나만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지. 잠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해남을 떠났을 때도 아빠를 버티게 한 힘은 너의 그 한마디였단다. 내 딸아 고맙다.
돌이켜보면 아빠의 삶은 기회와 실패의 연속이었구나. 신혼 때 대전에서 잘 나가던 컴퓨터 사업 실패하고 달랑 차 한 대 끌고 엄마랑 해남 내려올 때는 정말이지 세상 원망도 많이 했다. 실패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너에게는 아빠의 눈물을 물려주고 싶지 않구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랑하는 내 딸아, 이제는 아빠가 너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왔구나. 세상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곳이야. 목표가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고 방황만 할 뿐이란다. 우선 목표가 세워졌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단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목표에 근접할 기회가 오는 것조차도 모른단다. 주의 깊게 너의 주변상황을 살피면 기회가 보일거야. 그 때 준비된 마음으로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비록 그 결과물이 작아서 실망할지는 몰라도 한꺼번에 무너지는 실패는 없을 거야. 아빠의 경험으로 얻은 진리야.
내 딸아, 그렇게 너의 노력으로 하나를 얻으면 꼭 둘로 또는 셋으로 나누어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단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거니까. 세상은 냉혹하다 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가슴에 손 내밀어 쬘 수 있는 난로 하나쯤은 품고 살자.
내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아빠의 방황과 좌절을 보면서도 사춘기를 잘 넘기고,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바르게 커줘서 고맙다. 사랑하는 내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