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전국 고산 청소년백일장 대상 - 벽

2013-10-21     해남우리신문
윤득현(해남고 2학년)



뽀득 뽀드드득.
이곳에서 소리가 들릴 턱이 없었으나 나는 ‘이 따위의 소리가 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물속에서 퉁퉁 불어버린 수세미로 유리벽을 벅벅 문지르자 해파리의 가느다란 촉수처럼 물때가 벗겨져 나왔다.
얼마간 유리벽 근처를 부유하며 흐느적거리던 그것들은 곧 물속으로 녹아들어갔다. 내가 이 수족관에서 맡은 일이란 이렇게 유리벽이 흐려지지 않게 솔과 수세미로 물때를 닦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일만 하던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은 먹이로 주어진 생선을 나누어주는 일이 맡겨지기도 했지만 굶주린 거북떼들이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바람에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후론 먹이배급과 같은 일들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수족관에서 유능한 아쿠아리스트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밤낮으로 수세미를 들고 이 유리벽을 닦지 않았다면 관람객들 중 그 누구도 이 수족관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 수족관은 이끼 낀 애물단지 어항 따위로 전락할 뻔 하였던 것이다. 이 부분은 이 박물관의 소장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는 이따금 직접 시간을 내서 내가 유리벽을 닦고 있는 수족관 앞으로 찾아오곤 했는데, 그는 잠자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했고 커다란 사진기를 가져와 커다란 입을 잔뜩 벌려 히죽거리며 유리벽을 열심히 닦고 있는 내 모습을 담아가기도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도 플래시를 터트리는 그의 모습이 유난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열심히 유리를 닦는 데에 집중했다. 나는 그가 나의 열심을 보며 얼마 후 내 임금이 오르리라고 확신했다.
요새 들어 나는 이 수족관을 찾는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많아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수족관이라고 해봐야 눈길을 끌어들일만한 커다란 상어는커녕 조그만 빨판상어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거북 다섯 마리와 자잘한 피라미 몇 마리가 수족관 속을 느릿느릿 떠다닐 뿐이었다. 그럼에도 어디서 왜 모여들었는지 모를 사람들은 유리벽 앞으로 가득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는 뭐라뭐라 저들끼리 웃고 떠들었다. 가끔씩 그들은 이 두꺼운 유리벽 너머까지 울리도록 큰소리로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도통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모여들 때면 그들을 맞대고 유리벽을 닦아내는 것이 괜스레 멋쩍어져서는 대충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구석으로 숨어들곤 했다. 잠잠해졌나 싶어 다시 유리벽 앞으로 가보면 어느새 흥미를 잃었는지 그들은 건너편 파충류관으로 흩어져가고 없었다. 물론 이런 까닭 모를 환호와 인기가 나와 이 수족관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수족관 속 어류들의 먹이의 질과 양이 이 수족관에 몰려드는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 수족관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것은 나였기에 나는 최대한 그들이 수족관을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더욱 열심히 유리벽을 닦았다.
나의 노력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족관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갔다. 수족관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박물관 소장은 나를 기특히 여겼는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가진 수세미와 솔을 나에게 쥐어주었다. 전에 쓰던 낡고 이끼 냄새나는 수세미가 몸에 익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새로운 수세미들에 적응할 수 있었다. 수족관의 인기가 정점에 이르자 박물관 소장은 수족관에 생전 보지 못한 희귀한 모양새의 물고기들을 새롭게 집어넣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반질반질한 돌들이 깔리기도 했고 산호와 해초들도 추가되었다. 수족관에 무언가가 들어차면 들어찰수록 내가 할 일도 급속도로 많아졌고 박물관소장도 은근히 이를 보채려는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꼭 내가 있는 수족관 앞에 들러 벽에 막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타이르거나 화내는 것과 같은 표정으로 내게 뭔가를 한참이나 말하다가 수족관을 나서곤 했다. 나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보다는 몇 배나 열심히 일했고 모여든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곤 며칠 후 사장은 나의 수족관에 거대한 허연 이들이 겹겹이 쌓인 입을 가진 상어를 집어넣고 말았다. 유리벽 앞에 모인 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침을 꿀꺽이며 거대한 상어가 수족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 거대한 상어는 나에게 달려들어 내 오른팔을 물어뜯었다. 공들여 닦아놓은 유리벽으로 붉은 피가 수족관으로 얽혀드는 것을 그들은 선명히 보았을 것이다.
나는 등허리가 축 가라앉는 걸 느꼈다. 돌덩이가 묶인 듯이 가라앉는다. 수면위로 앞발이, 거북이의 앞발이 분홍색 수세미와 함께 떠다니는 것을 아쿠아리스트인 나는 수족관 밑바닥에 뒤집어져서 똑똑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