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도요지 발굴조사 서두르자

2013-11-01     해남우리신문
통일신라 말 한국도자기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화원 사동에 거대한 도요지가 들어선 것이다. 지표조사 결과 확인된 가마터만 80~90여기, 우리나라 초기청자 가마터 중 최대 규모이다. 이곳에서 만든 고급 찻잔은 어디로 팔려갔을까. 또한 그 정도 규모의 가마터를 누가 운영했을까.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화원 집단가마터는 한국 자기역사를 바꿀 수 있는 열쇠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화원면 가마터가 비상한 관심을 끈 데는 전국 최대 규모라는 면도 있지만 강진 청자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청자를 생산했고 우리나라 청자 발생이 중부에서 시작해 남부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화원에서 시작해 중부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도자 파편들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원에서 선보인 초기 청자기술은 강진으로 이동해 고려청자라는 화려한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화원 신덕저수지 인근 산 골짜기에는 자기 파편이 널려있다. 파편 주변에는 땅속에 매몰된 가마터가 있다. 파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자색을 띈다. 찻잔 밑둥은 해무리굽 모양이다. 이러한 자기 기술은 어디서 왔을까. 당시 청자는 중국에서만 생산된 자기였다. 그러나 화원에서 초기청자가 발견되면서 한국에서도 청자시대가 열리게 된다.
화원에서는 초기청자 뿐 아니라 흑자도 나온다. 화원청자가 생산된 시기는 9세기에서 10세기이다. 그러나 화원도요지는 11세기 들어 자취를 감추고 산이면 진산리 일대에 106기의 거대한 도요지가 들어선다. 산이면의 도기 기술은 강진으로 이동해 12세기 전후 상감청자 즉 고려청자 전성시대를 연다.
우리나라 청자역사를 바꿀 화원도요지는 처녀지로 알려져 왔다.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기에 한국 초기청자 역사를 정립할 중요한 도요지로 꼽혀온 것이다. 그러나 토석채취장이 허가되면서 훼손을 맞고 있다.
신덕저수지 확장공사로 8기 가마터는 현재 물속에 잠겨있다. 한국 청자역사를 정립하는데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화원가마터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더 이상의 토석채취 허가를 막기 위해 사적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
1000여년의 세월을 넘어온 유적지를 우리 대에 훼손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