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2013-11-29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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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상식 밖의 이야기 같은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것은 공해입니다. 하지만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마음에 방송을 하는 아저씨에게 동정이 갑니다.
이건 제가 사는 아파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식을 벗어난 일들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곳에나 휴지조각처럼 흔한 모습입니다.
쓰레기를 투기한다던지 바로 옆에 주차 공간이 있음에도 도로 중앙에 정차를 해놓고 교통정체를 일으킨다던지,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도로 중앙을 아주 태연하게 가로지르는 일들을 보며 사회가 도덕 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 등굣길 경찰관과 녹색어머니회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시간이 지나면 규범 준수 의식은 반감되고 맙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술병과 담배꽁초를 줍는 아이들의 손길이 불쌍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원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규범이 존재합니다.
규범이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입니다.
문명이 아주 발달한 곳이나 오지의 부족사회에도 그들만의 규칙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는 인종과 민족과 언어가 다른 전 세계의 국가가 참가하지만, 경기마다 일정한 규칙(rule)에 의해서 경기를 하고 그 규칙(rule)대로 심판을 보기 때문에 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을 보면 굉장히 자유분방한 것 같아도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킨답니다.
집회 시위의 경우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폭넓은 자유를 허용하지만, 폴리스라인(경찰 통제선)을 넘게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2009년도) 미연방 하원의원 5명이 워싱턴 소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폴리스라인을 넘었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워 체포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떤 칼럼리스트가 「의원도 법을 어기면 체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제목의 글을 보고 ‘선진국은 선진국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금년도의 정확한 통계 자료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법질서 준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매년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경제력과 질서의식이 대조를 이루는 나라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건 통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상황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 있습니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발표한 <깨진 유리창>이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스텐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필립 잠바르도 교수가 자동차 2대를 비교 실험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2대를 골목에 세워놓고 한 대는 보닛만 열어놓은 상태로 또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놓아두었는데 일주일 후 자동차 2대에는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답니다.
보닛만 열어놓은 자동차는 일주일 후에도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아둔 자동차는 배터리도 타이어도 모두 없어졌답니다.
또, 뉴욕에서는 지하철의 낙서를 말끔히 제거했는데 범죄율이 상당히 감소했답니다. 이 이론과 실증(實證)에 의하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 쓰레기 투기, 무단 횡단 등 경미하게 생각하는 질서의식이 바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법이 없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그런 곳을 유토피아(Utopia)라고 하던가요?
유토피아는 멀기만 한 이상국 이야기일지라도 제발 우리 사회가 아주 초보적인 이런 정도의 이야기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밤에 어른들이 운동장에 버리고 간 술병과 담배꽁초를 아이들과 함께 줍다가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가슴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