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親舊)라는 말
2013-12-06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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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다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께 자랐던 허물없는 친구들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립니다.
계절은 변해도 우리는 늘 함께했습니다. 봄엔 올챙이를 잡으러 다녔고 여름엔 냇가에서 함께 멱을 감았습니다.
가을엔 토실토실 영근 밤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는 재미가 있었고 겨울이면 함께 연을 날렸습니다.
밤이면 공부를 핑계삼아 함께 모여 이야기나 주고 받았던 그들이 이젠 그립습니다.
우린 서로를 친구(親舊)라 했습니다.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어떤 가수의 ‘여보게 친구’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어질 적 향수가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보게 친구 웃어나 보게 어쩌다 말다툼 한번 했다고 등질 수 있나 아지랑이 언덕에 푸르러간 보리 따라 솔향기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던 아하, 자네와 난 친구야 친구.”
친구!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친구란 사전적 의미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함석헌님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를 친구처럼 해석하며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생략)”
연륜의 나이테가 쌓이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가까이 다가와 따스한 말 한마디 던져주고 관심을 가져 줄 그런 친구가 그립습니다.
어느 날, 전남교육신문에서 6.5%라는 에세이를 보았습니다. 6.5%는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입니다. 글쓴이가 바로 6.5%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췌장암 환자였습니다.
그 분의 글을 읽다 괜스레 애잔함이 어른거려 이리 저리 수소문 끝에 그 분과 첫 대화를 나눈 후 그 분과 저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분이 어쩌면 작은 도서관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늦지 않습니다’라는 그 분의 글 한 대목을 빌립니다.
“누구나 살아온 어제를 되작거리다 보면 아차!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헛헛한 인생의 시장기 같은 것이 밀물처럼 차오르기도 했을 거구요. 저도 이런 허허로움에 휘둘려 제 인생의 빈칸을 채우려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중략) 세월이 쌓인 인생의 황혼기에는 부나, 명성이나 권세가 한 줌의 쌀겨와 같다는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 망년우(忘年友)라는 애정어린 청을 했습니다.
“퇴계와 율곡은 35년의 연륜 차이가 나는데 친구였답니다. 그걸 망년우(忘年友)라 하던가요.”
그 분과의 대화를 할 때마다 그 분의 내공(內功)은 해묵은 김치같고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 같은 조화로움이 느껴집니다. “잘 계신가요?”라는 짧은 대화에서도 가슴이 채워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한부 생명을 살아가는 그 분의 목소리에 힘이 있고 또랑또랑해 질수록 내 가슴이 즐겁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됩니다.
‘나이를 잊은 벗이라는 의미의 망년우’
그 분을 통해 친구(親舊)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퇴계와 율곡처럼 연륜의 차이가 많음에도 가슴을 열고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까지를 격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면 그 분의 초청처럼 망년우의 연이 아닐는지요.
널리 알려진 말로 ‘세 사람이 같이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내가 배워야 할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는 이를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습니다.
저에게 그 분이 망년우라는 청을 했지만 공자님의 말처럼 스승의 예를 갖추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청풍납자(淸風衲子)라고 부르고 싶은 망년우! 그 분에게 남은 해 그림자가 더 길고 석양이 더 아름답기를 마음 모읍니다. 그 분이 살아계시는 동안만이라도 난 그 분과 멱을 감고 매미를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연륜의 차이를 넘어 난 그 분에게서 깊은 삶의 이야기를 듣고 황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그가 누구이던지 간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힘들고 지칠 때 가슴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등이라도 도닥여 줄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