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김연아의 숨겨진 시간
2014-02-21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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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소치 동계올림픽 한국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는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중국과의 선두자리를 놓고 역전에 재역전을 되풀이하다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 지점에서 심석희가 아웃코스로 추월을 하며 금메달을 추가하는 장면은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진 막판 뒤집기와 같은 스릴 넘치는 역전극이었습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이후 8년만의 정상 탈환! 금메달의 영광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투자한 결과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명문대 듀크대학의 행동경제학과 ‘댄 에리얼리 교수’는 인간의 행동심리를 연구하면서 학생들에게 아래와 같은 동영상(UCC)을 보여주고 반응을 물었답니다.
허름한 창고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자물쇠는 열쇠도 없고 잠근 지 너무 오래되어 녹이 슨 상태라서 열기가 어려웠습니다. 자물쇠를 풀기 위해 수리공을 불렀답니다.
첫 번째 수리공이 도착했습니다. 온갖 도구를 동원해서 장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렸으나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수리공은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몇 초 만에 열쇠를 풉니다.
이 동영상을 보여준 후 학생들에게 “누구에게 수리비를 더 드리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고생한 사람에게 수리비를 더 주고 싶다는 대답을 했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현장만을 본다면 누구나 동정심이 가고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두 번째 수리공이 불과 1,2초 만에 자물쇠를 풀기까지의 이면에 쏟았던 실패와 땀과 열심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뭔가 남다른 사람, 성공한 사람들의 이면엔 숨겨진 시간,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시간 보다 현재에 드러나 보이는 사실이나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2002년 서울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축구의 마술사 히딩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2002년 6월 대한민국을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고 온 국민이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었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던 주역입니다.
히딩크에게도 숨겨진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히딩크는 네델란드 어느 프로팀의 무명의 축수선수였습니다. 15년간이나 무명 생활을 했던 벤치워머(benchwarmer)였습니다. 당시 연봉이 적어 주중에는 특수학교 아이들의 체육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힘겨웠던 시간들이 인생을 바꾸게 되었답니다. 그가 특수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소통 문제였답니다.
그는 1982년도에 프로선수 생활에서 물러나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숨겨진 시간 속에서 축적됐던 히딩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히딩크의 설명과 작전을 선수들이 너무도 잘 알아들었답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낸 후 1998년에 네덜란드 축구감독으로 부임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그가 한국축구 대표 팀의 사령탑을 맡았고 축구 변방의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리는 쾌거를 이룹니다.
히딩크가 유명인이 된 후 자서전을 내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내 인생 속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 감추고 싶었던 시간, 어쩌면 숨겨진 시간이 없었던들 오늘날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피겨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김연아. ‘그녀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주장’을 불식시키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명품 연기를 펼쳐 올림픽 2연패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녀의 빙상 위에서의 연출만을 보면 너무도 화려합니다. 하지만 김연아의 숨겨진 시간은 그의 자서전과도 같은 ‘김연아의 7분 드라마’라는 책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책은 2분 50초의 쇼트와 4분 10초의 프리, 세상을 감동시킨 눈부신 7분의 무대 뒤에 숨겨진 김연아의 진짜 이야기, 김연아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겪었던 고난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연아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밴쿠버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500m 2연패 기록을 달성한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빌립니다.
“선수라면 누구나 하지정맥류나 무릎 부상 등의 병을 달고 삽니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흘린 눈물에 대한 물음에 “그 동안 힘들게 운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지만 숨겨진 시간을 두려워합니다. 현재의 결실은 숨겨진 시간들이 드러난 결과일 뿐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심석희, 히딩크, 김연아, 이상화…. 모두들 숨겨진 시간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댄 에리얼리 교수’의 물음에 1,2초 만에 자물쇠를 푼 두 번째 수리공에게 더 많은 수고비를 지불할 것입니다. 그건 그에게 숨겨진 시간이 더 많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숨겨진 시간이 많은 이에게 나의 한 표를 선물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