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2010-05-20 해남우리신문
오늘에야 왜 남자들이 무슨 기념일을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나 알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결혼기념일을 잊어본 적 없던 남편과 나지만, 학원 이사로 정신이 없어 둘 다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문자 울림에 열어봤더니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날아온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에 웬 뚱딴지 같은 결혼기념일이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머릿속에서 완전히 삭제되는 날도 있구나.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이래서 남자들이 바쁘면 잊게 되는구나 하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구요. 아직 인터넷 연결과 전기공사가 마무리 안돼서 아침 일찍 나간 남편에게 “결혼기념일 축하해요”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왔네요. “어?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네이. 허허.” 멋적게 웃으며 점심은 공사하는 분들과 먹어야 되니 혼자 먹고 출근하라네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눈가의 잔주름이 훈장처럼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세월의 흔적에 왠지 서글퍼집니다. 남편 역시도 마찬가지겠지요. 한 여인의 지아비가 되어, 세 공주의 아비가 되어 열심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어느새 내려앉은 흰머리와 주름투성이 모습으로 남아있겠지요.
가슴속으로 되뇝니다. 이젠 정말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며, 즐겁게 살아도 짧은 세월만 아껴 놓았으니 그렇게 살기로…. 바쁜 시간 잠시 넋두리 늘어놓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