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는 말 못하는 아픔, 치질

2014-11-03     정영일
▲ 정영일(해남종합병원 외과과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질을 창피한 질환으로 생각해 겉으로 밝히기를 매우 꺼려해 병을 키워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치질이란 치핵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치핵이란 항문 주면의 혈관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확장된 것으로 내치핵과 외치핵이 있다.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괜찮은데 술만 마시면 항문에서 뭔가 튀어나오고 안 나오던 피도 나온다고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술이 갖는 말초혈관 확장 능력 때문이다. 치핵이란 것이 혈관이 확장되면서 튀어나오는 것인데 술을 마시면 혈관이 더 확장돼 본인이 느낄 만큼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게 된다. 다른 질병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술은 치질(치핵)의 악화 요인이니 본인이 치질이 있다면 술은 삼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내치핵과 외치핵을 어떻게 구분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통증이다. 치핵 모두가 항문에서 뭔가가 튀어나온다는 점은 같지만, 내치핵은 내장부위에서 발생해 통증보다는 출혈로 병원을 찾고, 외치핵은 피부부위에서 발생하여 통증을 심하게 느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치핵이 심해지면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치핵의 경우 치료는 수술이다. 물론 초기의 경우 약물 치료와 좌욕 등을 통해 증상의 호전과 증상 악화를 늦출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치핵이 더 심해져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일반적인 수술은 확장된 혈관, 즉 치핵을 절제해 내고 혈관을 묶어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치핵 수술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수술 후 환자들의 자기 관리가 매우 중요한 수술이다. 치핵을 절제하고 난 후 봉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벌어진 상태로 수술을 끝낸다. 그 이유는 흉터로 인해 항문이 약간 좁아지는데 봉합까지 해 버린다면 항문이 매우 좁아져 정상적인 배변이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술 후에도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까지 출혈과 통증이 지속될 수 있다. 그때까지 좌욕과 충분한 단백질 섭취로 상처가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 수술 후 최선의 치료라 하겠다.


치열이란 항문이 찢어지는 경우로 변비 환자에서 많이 발생한다. 변이 굳어 변이 굵게 나오면서 과도한 항문 확장으로 항문이 찢어지는 것이다. 증상은 변을 볼 때와 보고난 후 뒤처리 과정에서 통증을 느끼고 피가 난다. 어떤 환자들은 본인은 변비가 없는데 가끔씩 변을 보고 난 후 피가 나고 아프다고 해 병원을 찾아온다. 이런 경우는 첫 대변이 굵게 나오면서 항문에 상처를 내고 난 후 중간변이 무르게 나오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단기간 치열이 발생하는 경우를 급성 치열, 수 개월간 지속된 경우 만성 치열이라 한다. 급성 치열인 경우 약물 치료와 함께 배변 습관만 고친다면 수술이 필요하지 않지만, 만성 치열인 경우에는 항문이 좁아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항문주위 농양과 치루가 있다. 명칭은 두 개로 나눠져 있지만, 사실 하나의 질환으로 볼 수 있다. 항문주위 농양이 치루가 되기 때문이다. 항문주위 농양이란 항문주위 피부에 농양이 생긴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로 항문관(변이 나오는 길)과 연결돼 발생하는 것이다. 항문주위 농양(고름집)의 치료는 절개해 배농시키는 것인데, 배농 후에도 항문관과 연결된 길이 남게 된다. 농양 치료 후 남아있는 통로가 바로 치루라는 것이다. 다행히 농양이 한번 발생하고 재발하지 않는다면 치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농양이 자꾸 재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농양 치료 후 발생한 치루에 대해서도 수술적 치료를 통해 치루를 없애 주는 것이 좋다.


치질은 임신, 변비, 또는 장시간의 의자 생활 등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원인들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악화 요인이라 하겠다. 다만 경험상 유전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 중 치질(치핵)을 가진 분이 있었다면 자녀들에서도 치질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치질의 치료는 대부분 수술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치질 수술도 다른 수술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오면 수술하기도 편하고 수술 후 통증도 적으며, 치료 경과도 양호하다.
다시 말하자면, 치질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 창피하고 병원가기가 어렵다 해 참고 지내다가 병을 키워서 병원에 오게 되는 경우, 수술도 힘들지만 본인이 겪는 통증이나 출혈이 더 심하고,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더 늦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