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겨울에도 집을 짓는다

2015-01-02     김석천
▲ 김석천(해남동초 교사)

삭풍(朔風)이 나목(裸木)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보듬은 것들을 토해낼 것처럼 잔뜩 찌푸린 잿빛이다.
겹겹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감나무 위에 까치 한마리가 앉아있다. 까치밥마저 동나버린 감나무엔 빈자리가 삭연한데 큼지막한 나무 가지를 물고 뒷꽁무니를 좌우로 흔들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저 녀석은 한겨울에도 집을 짓나?’
녀석은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안심이 되었던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간다.


거기, 고목나무의 우듬지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여년묵은 까치집이 보였다. 벗은 나무의 가지와 가지 사이에 걸쳐져 있는 까치집이 덩그랗다. 어른 팔로 한 아름 정도의 큰 둥지다. 날마다 오가던 길인데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더니만…
까치는 받침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뭇가지를 나무의 가지와 가지 사이에 걸쳐 교묘하게 기초를 다듬고 그 위쪽으로 자잘한 나뭇가지들을 베를 짜듯이 가새질러 쌓아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하필이면 이렇게 춥고 바람 부는 날 집을 지을까? 따스한 날도 많으련만….’


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는 데도 까치는 연신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자료를 뒤져보니 까치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한겨울부터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새들이 일주일 정도 걸려 집을 짓는데 반해 까치는 한 달 이상이나 걸려 집을 지으며, 까치가 집 하나를 만드는데 물어오는 나무 가지의 수가 1000개가 넘는단다.
정호승 님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의 한 부분을 가져온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서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지은 집은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지은 집은 약한 바람에도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새들의 생활에 대해 생무지였던지라 까치가 바람 부는 날 집을 짓는 까닭이 나무의 잔가지가 많이 부러져 집짓기가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 바람 부는 날을 택해 집을 짓는다고 치자. 하지만 이 추운 겨울에 더구나 번식기도 아니고 또 다른 새들은 모두들 추위를 피해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한겨울인데도 까치만 홀로 집을 엮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북풍 속에서도 다가올 봄 냄새를 맡고 있을게다. 흔들리는 바람에도, 꽁꽁 언 추위 속에서도 두세 달 후에 다가올 따스한 봄에 여러 식구가 모여 알콩달콩 살아갈 꿈을 꾸는 것일 게다.
한겨울에도 부지런히 집을 짓는 까치의 모습 위에 마더 테레사님의 말이 오버랩(overlap) 된다. ‘신은 우리가 성공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소혼단장(消魂斷腸)의 아픔을 간직한 갑오년은 저만치 물러갔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실밥 터지는 소리는 여전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세상은 겨울바람처럼 시리고 혼돈스러우며 정의와 진실은 모호하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세월호가 사라져간 병풍도 앞바다처럼 흉흉하다.


하지만 상처는 스승이라더라. 상처가 많은 나무일수록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더라.
매듭 없이 성장하는 대나무가 없듯이 지금까지의 상흔(傷痕)들을 모두 대나무의 한 매듭으로 생각하자. 아무리 강렬한 햇빛 아래에도 그림자는 머문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도 그림자로 덮인 밤을 지내는 동안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들은 겨울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비록, 오늘의 실상들이 겨울 같을지라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니 한 겨울에도 집을 짓는 까치의 가슴을 품어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