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에게 아파트 평수가 무슨 의미 있겠는가
2014-05-02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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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에게 아파트 평수가 무슨 의미 있겠는가
「발길에 닿은 인연」을 읽고
독자는 책 한권을 모두 읽었다고 언제 말 할 수 있을까?
이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책 뒷장을 덮는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책장을 언제 덮던지 독후감이 완성되거나 누군가와 독후 담을 나눈 후라고 말하고 싶다.
이때쯤 책에 대한 내 소견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책을 읽은 후에는 가끔 A4 용지 2~3매 정도의 독후감을 쓰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고전 중심의 메타 북을 즐겨 읽기 때문에 독후감 쓰는 일이 없다.
메타 북은 쉬엄쉬엄 읽으면서 독후감은 붉은 색 밑줄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박도영선생의 「발길에 닿은 인연」을 선물 받고 오랜만에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우리속담에 ‘나이 값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이 값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박도영 선생 역시 그의 고희기념문집「발길에 닿은 인연」의 서문에서 ‘생각해 보니 이 시간까지 온 저의 생에서 부족하고 어설펐던 부분이 많았기에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이 값을 못했다는 변명이다. 그렇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훌륭한 인품에서 나오는 겸양임을 독자는 책을 읽어 가면서 깨닫게 된다. 더구나 책을 네 권이나 발간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께서 무엇이 부끄럽다는 것일까?
또 고희를 맞이하는 노년에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분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리라는 다짐에서도 그의 성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필자는 평생을 책과 함께하고 여행을 좋아하여 실제로 수많은 내외국의 여행길-뱃길, 하늘 길, 철길에서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이름 짓고 삶의 자세를 형이상학적으로 한 계단 끌어 올리고 있다. 마치 수학에서 선은 수많은 점의 연결이요, 사람은 갖가지 인연의 끈에 묶인 존재로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선생의 진면목은 선진국 관광에서 느꼈던 이런 저런 감정을 우리나라의 국민성 민족성 혹은 공중도덕과 비교하면서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는 특히 필자가 글쓰기 공부 강의 중에 자주 들려주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해방둥이 세대로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질곡의 시절마저 ‘가난의 미학’이라고 부르는 여유 또한 필자의 천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주체할 수 없었던 방랑벽 때문에 혼자서 4남매를 기르며 고생하신 어머니를 회고하는〈바다와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모습이다.
글은 필자의 인격과 동급이라고 했던 가.
「발길에 닿은 인연」에서처럼 박도영 선생 글의 특징은 배려, 소통, 겸손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에 성공, 출세, 축재(蓄財)와 같은 세속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노년에 찾은 오늘의 내 행복은 박 선생과의 인연 덕분이다. 나뿐만 아니라 6~7학년의 광나루문학회 회원들 역시 수필공부 한다면서 매주 월요일 마다 설익은 문장을 앞에 놓고 웃고 울던 그 시간이 행복했다고 공감하고 있다.
책의 본문 중에서 ‘삶은 자기의 영혼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지적하는「유리시즈의 시선」처럼 인생은 여행하는 나그네 아닌가? 나그네에게 땅이나 아파트의 평수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폼 나는 의자가 가당치나 하겠는가.
선생께서 우리의 삶을 만남에 방점을 찍는 것처럼 나도 이웃을 사랑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 길만이 나그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