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 대죽리에 핀 사랑의 꽃
교직에 몸담고 있다 퇴직 후 아름다운 마을 송지 대죽리로 귀농했다.
내 인생 제2막의 시작, 참으로 배울 것도 많고 새로운 세상이 열림을 느낀다.
모든 게 생소해 농사에 관한 기본 정보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하나하나 배우며 살고 있다. 정말 고마우신 동네 분들이다.
어느 날 노인회장님 주재로 2018년 노인회 운영방안 및 봄나들이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생애 처음으로 노인회에 가입했다.
봄나들이는 여수와 광양 방면으로 결정이 나고, 드디어 3월30일로 나들이를 떠났다.
처음 가는 어르신들과의 야유회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혹 내가 날짜를 까먹었을까 이효석 친구는 친절하게도 전날 전화로 일깨운다. 마을은 온통 그 옛날 동생들의 결혼식 때처럼 떡하고 밥하고 회판 무치고, 머리고기 삶고 전날부터 떠들썩하다.
부녀회장과 젊은 아주머니들 34명이 함께 한 우리마을 최대 잔치놀이인 셈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소풍도 저랬을까? 모두들 얼굴에 복사꽃, 벚꽃, 진달래가 피었다. 40년 교직생활을 퇴직한 내가 여기서는 갓 입학했으니 그저 막둥이란다. 재밌지 아니한가?
“막둥이”하고 부르면 달려나가 까불고(여기서는 재롱이라고 하자) 술을 권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적어도 오늘만은 아무 근심이 없다. 부녀회장, 총무님도 그저 즐거운 얼굴이다. 나도 덩달아 기뻤다. 그 어르신들과 여수 관광선 1층에서 땀내 나게 한바탕 춤을 추며 하나 됨을 느꼈다.
부둣가 벤치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고 하동 화개장터로 향했다. 차에서 보는 섬진강 벚꽃 10리 길은 정말 장관이었다. 우리는 오직 재미있게 봄나들이 온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 자체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화개장터에서도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솔선수범이다.
그런데 오후 4시까지 모이라고 했는데, 아뿔싸, 할머니 한 분이 안 보이신다.
그 할머니는 원래 대죽리가 고향도 아니고, 딸네 집에서 얼마 전부터 함께 사는, 본 마을과도 떨어진 노루목에 살고 계신 분이다. 왕래가 뜸해 좀 짜증도 날법한데 모두가 걱정이시다.
그래서 젊은 우리 넷이 찾으러 나갔다. 나는 화개장터에 가서 안내방송하고, 둘이는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고, 영리한 우리 박상봉 총무님은 마지막으로 본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총무님이 모시고 온다. 시간이 한 20여 분 지체됐지만 얼마나 혼자 안절부절 했냐고 다들 걱정해주신다.
나는 차 안에서 ‘정말 우리 마을은 참 좋은 마을이다. 진짜 참꽃은 어르신들이다’며 감탄한다.
어르신들 마음에 핀 사랑의 꽃이 이걸까. 서산낙조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서로 도와주려는 농촌스러움이 잘 보존된 바닷가의 아름다운 우리 마을이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