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야, 땅끝 댈기미 해안으로 오너라

2010-06-05     해남우리신문

사랑하는 명이야,
태평양 건너 벚꽃과 함께 해남을 다녀간 지 벌써 두 달이 지났구나.
네가 머물고 있는 보스톤은 지금 어떠니? 그곳도 해변이라서 바람 많고 때때로 안개가 끼고 습도도 높다고 했지. 해남은 6월이 된 이제야 한기가 한풀 꺾인 청량한 봄밤을 만나고 있어.
너와 함께 땅끝을 찾았었지. 덜컹 묵직한 철문이 열리며 파도 넘실대는 바다가 펼쳐졌어. 지금까지 온 길이 모조리 지워지고 우린 갈 데 없는 이 벼랑 위에서 물었어. ‘그럼, 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가슴이 아려 왔어. 너나 나나 이방인이기는 마찬가지지.
‘조약돌을 바다에 던지며 사랑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댈기미 해안에서 조약돌을 먼 바다로 던지고, 파도와 바람 사이에서 손을 흔드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아름다운 그림처럼 눈에 박혀 있단다.
나에게 넌 지금도 7살짜리 어린 동생이다. 생각나? ‘어부바’를 좋아해서 걸핏하면 의자 위로 올라 내 등에다 네 몸을 맡겼지. 키는 나보다 엄지손가락 하나만큼 더 컸지만 넌 나에게 하나뿐인 귀여운 동생, 난 너의 든든한 언니였어, 맞지?
지난봄이었지. 네 손가락이 산기슭에 핀 진달래를 가리키면 난 비에 불어난 개울도 마다않고 건너가 꽃을 꺾어 왔어. 네 손이 벌을 가리키면 신발을 휘둘러 날아가는 벌도 잡아다 주었지. 그것들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너의 모습이 보고 싶고, 그 아기 웃음소리가 다시 듣고 싶어 그랬어. 난 너의 언니니까.
나의 작은 동생, 명이야.
엄마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모두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고 울 때는 사실은 네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단다. 엄마 잃은 슬픔까지 네가 독차지하는 것 같아서. 나와는 겨우 한 살 차이인데 말이야. 그렇지만 체온 잃은 병아리처럼 엎어져 파르르 떠는 널 가슴에 안았을 때, ‘엄마도 돌아가시면서 우리 막내가 제일 걱정이셨겠다’고 생각했다.
명이야, 해남을 다녀간 후 너는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10년 후 쯤 해남으로 와서 나와 함께 살고 싶다 했지. 하지만, 명이야! 해남 땅도 우리의 어머니를 되돌려 줄 순 없을 거야. 그처럼 행복했던 시절이 이 지상에서는 다시 없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해남의 바다가, 황토 빛 대지가 이제 널 예쁜 아이에서 품 넓은 어머니로 만들 거라 믿어.
사랑하는 명이야.
다음에 올 때는 혼자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요트를 타고 와라. 그럼 댈기미 해안으로 널 마중 나갈게. 하하하….
그럼, 해남으로 돌아올 때까지 안녕….
사랑하는 넷째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