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는 배려
첫 번째 손님으로 병원에 간다는 노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차에 오른다. “아이구 어서 죽어야 하는 데 오래 살다 보니 버스기사한테까지 성가시게 하네.”
동작이 굼뜬 할머니의 미안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매일 버스를 운행하다 보면 이렇게 병원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날 힘들었던 시절을 겪으면서 찾아온 질병으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보면, 힘없고 연로하신 노인분의 우대와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침부터 새삼 깨닫는다.
가까이에 돌봐줄 자식은 없고, 질긴 생명에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삶이 힘들게 병원 계단을 오르내리는 노인의 서글픈 일상 아니겠는가?
까마득한 지난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숱한 희로애락의 고뇌와 고통 속에서 오직 가정과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든든했던 부모님이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들려온다. 의학기술이 발달해 생명 연장도 한 원인이지만 먹거리 사회가 변하면서 충분한 영양공급도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의 노인 세대는 65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아직 75세까지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1930년대 출생한 노인들은 먹고살기 바빠 자신의 건강과 배움의 혜택은 생각지도 못한 세대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나이지만 일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자식에 대한 애착이다.
또 평생 해온 일이라 내려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들 노인세대는 어느 한 곳 기댈 곳도 대우받을 곳도 없는 세대이다. 어쩌면 복이 없는 세대인지 아니면 시대를 잘못 선택해 태어난 건지. 엄혹했던 시절에 꿈도 접었던 노인세대이다. 민주화 물결에, 개인 소득 3만불 시대에, 좋은 세상은 눈앞인데 막상 그것을 맛보려 하니 황혼이 눈앞이다.
우리는 매년 한 번 있는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알고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노인학대 예방의 날만 기억하지 말고 매일 자식의 마음으로 노인분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병원을 가기 위해 지팡이에 의지하며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들에게 늦게 오른다고 꾸지람 섞인 언어는 삼가야 한다.
먼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 노년, 그들을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병원관계자와 버스기사들의 친절은 그분들에게 작지만 큰 기쁨일 수 있다.
대화하기 힘들어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태어난 노인분을 위한 최선의 서비스는 이해와 배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