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 이야기] 92세 할아버지가 가꾼 정원에도 봄은 왔다

2020-04-13     박영자 기자

 

옥천면 대산마을 신관희 옹
25년 가꿨더니 갤러리 됐다

▲ 옥천면 대산마을 신관희 할아버지가 65세 때부터 가꾼 마당 정원, 올해도 봄은 꽃과 바람으로 그렇게 찾아왔다.

 92세 할아버지가 가꾸는 시골집 마당에 봄이 완연하다. 
나무보다 땅 위에 더 수북이 쌓인 벚꽃과 붉은 동백, 철쭉과 꽃잔디, 옥천면 대산마을 신관희(92) 할아버지 댁 정원은 웅장함보단 소박한 농촌다움이 묻어있다. 25년간 심고 가꾼 세월의 흔적이 있는 정원, 모든 나무와 꽃은 할아버지가 직접 해남오일장에서 묘목을 구입해 키운 것들이다. 
신관희 할아버지는 25여년 전 65세 때 노년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해남으로 내려왔다. 
북일 출신이었지만 지인이 소개해준 지금의 집터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에 계단식 작은 텃밭 등 너무도 아늑했다. 집을 구입한 후 새롭게 단장했다. 그 와중에 함께한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벌써 20년 전이다. 아내가 떠난 후에도 할아버지 손엔 농기구가 들려 있다. 
해남5일장에서 벚나무 10여 그루를 사와 텃밭 둘레에, 개울가에 심고 토종동백 동산도 만들었다. 마당엔 철쭉과 야생화, 돌 등을 모아 작은 꽃밭을 만들고 벚꽃이 자라는 개울가에 시원한 정자도 지었다. 
돌담의 이끼,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는 동안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다. 
그 작던 벚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이젠 할아버지가 기댈 쉼의 그늘이 됐다. 처음 집에 들여왔을 때의 그 작은 것들이 이젠 할아버지를 이끄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말을 건넨다. 겨울 동안 잘 버텨줘서 고맙다, 나의 삶에 와줘서 고맙다고.
할아버지는 마을회관에도 나가지 않는다. 대부분 70~80대다 보니 함께할 친구가 없다. 
한 달에 네 번 정도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읍내를 나가는 시간 외엔 종일 텃밭의 채소와 나무들과 함께한다. 저녁엔 책이 동무다. 
자녀들은 1년에 한 번 휴가차 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꾼 집이 자녀들에겐 별장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잠시 별장을 지켜주는 사람일 뿐이라며.
92세의 나이, 그럼에도 집이 너무도 정갈하다. 할아버지는 본채 옆 헛간을 구들방으로 만들어 이곳에서 생활한다. 구들방에 쓰일 장작이 장독대 앞에 그림처럼 쌓여있다. 
할아버지가 좀 더 활동적이었을 때 준비한 장작더미, 여기에 동네 사람들도 보탠 장작들이다. 벽에 걸린 빗자루와 쓰레받기, 시골집 맛이 난다. 텃밭에선 오이며 가지, 토마토, 상추 등이 자랄 것이다.
신 할아버지 집은 농촌집의 갤러리이다. 돌 하나, 화분 하나 모든 것에 신 할아버지의 예술적 감각이 묻어있다. 타고난 감각이다.
신 할아버지는 92세 나이지만 20년째 홀로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신 할아버지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욕심을 버리면 삶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 깨끗한 환경을 꼽는다. 나무에게 말을 건네고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삶이다. 식사는 아침엔 밥을, 점심엔 죽을 먹는 2식이다. 해남군에서 보내주는 일주일 1회 반찬배달과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반찬에, 텃밭에서 가꾼 채소, 직접 한 밥으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
신 할아버지 댁은 4~5월이 제일 예쁘다. 올해는 철이 빨라 벚꽃이 일찍 지고 있지만 곧 있으면 철쭉과 장미가 만개한다. 텃밭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