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생태다
2010-06-18 해남우리신문
직선은 그로 인해 파생된 속도감만큼 인간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마치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처럼, 지나간 말을 곱씹어 볼 틈도 없이 속사포로 쏘아대는 수다처럼, 직선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앞만 보고 뛰기를 강요한다.
오랜만에 해남을 찾아온 이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해남이 너무 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에서처럼 해남도 시간이 멈춰져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도 직선에 길들여져 곡선을 보고 싶어 해남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해남에서 찾으려 했던 것, 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연스러움이었을 게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자연(自然)을 직역하면 ‘스스로 그러한 상태’로 풀이된다. 곧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자연은 모든 생물이 공유하고 나눠 써야 할 공간이다. 아무리 생태를 부르짖지만 지금 들이대려는 불도저의 삽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자명하다.
해남의 이곳저곳을 생태환경적으로 바꾼다고 한다. 앞에 생태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한 번 인간의 손을 탄 자연은 길들인 짐승처럼 계속 칭얼댄다. 직선만을 달려온 인간들은 자연의 느린 치유력을 기다려주지 못한다. 자연은 자체 치유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약간의 통증에도 진통제를 털어 넣어야 안심이 되는 엄살을 자연에 들이대고 있다.
편리함을 모두 버리고 원시시대로 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자연에 인간의 관여를 최소화 하자는 이야기다.
구비마다 느리게 간직한 이야기를 불도저가 지워버리기 전에 진정 해남의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