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관련된 바위들
2010-06-26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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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바위 벌바위 처녀바위 여근바위 설화 재밌네
바다 가운데에 있는 바위가 물에 잠기면 동네에서 가장 이쁜 처녀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토록 총각들 가슴을 태우던 어여쁜 처녀가 죽는다고 하니, 바위가 물에 잠기도록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면 돌을 싣고 갑니다. 바위 위에 돌을 쌓기 위해서지요.
이 마을에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예쁘다는 처녀를 사랑했던 총각입니다. 감히 처녀에게 다가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바보 총각, 그러나 처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 매일 바위 위에 돌을 쌓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 설레고 행복했던 그 처녀가 몹쓸 일을 당할까 하는 염려였겠지요. 또 쌓고 또 쌓고 이제는 그만하면 될 터인데도 밀물 때가 되면 바위가 물에 잠길까 애태우곤 합니다.
이 같은 마음이 그 총각에게만 있었겠습니까. 이 마을 총각들을 비롯한 옆 동네 총각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저마다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처녀들을 생각하면서. 동네 사람들도 자신의 여식에게 그 같은 해가 올까 너도나도 돌 쌓기에 나섰구요. 이 같은 이야기가 전하는 바위는 북평면 이진마을 선창가 앞 바다 속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여바위라 부릅니다. 여바위란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 숨어있는 바위를 일컫습니다.
바다 가운데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있는 이 바위 때문에 혹 배들이 난파를 당할까봐 아마도 그 위에 돌을 쌓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쁜 처녀가 죽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진 마을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너무도 열심히 돌을 쌓았다고 합니다. 너무도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민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만든 설화이지요.
해남에는 여성의 성과 너무도 닮은 바위가 있습니다. 해남읍에서 옥천면으로 향하는 우슬재 우측에 있는 바위입니다. 여성 성기와 너무도 흡사한 바위가 그것도 다리를 쩍 벌리고 있어 옥천면 사람들은 벌바위라 부릅니다. 바위 가운데 금이 가 있고 아래쪽에 수풀이 우거진 모양, 그리고 사시사철 촉촉이 젖어있는 모양이 아무리 봐도 여성성입니다.
여성의 성기는 다산을 상징한다는데 옥천면 영춘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해괴망측할 뿐이었습니다. 마을을 정면으로 향한 채 다리를 쩍 벌리고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지요.
30여 년 전만 해도 영춘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없애버리자는 공론이 일었다지요. 동네에 인물이 나지 않는 것이 전부 벌바위 탓이라며 마을 회의까지 열며 없앨 방법을 궁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 있는 엄청나게 큰 바위를 곡괭이로 없앨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고 멀쩡한 바위를 다이너마이트로 없애겠어요? 회의만 하다 끝난 사안이었답니다. 참 바위 입장에선 너무도 억울한 일지요. 지각변동으로 산이 생기고 바위가 생겨날 때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이 괜히 무엇을 닮았다며 자신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니 화를 낼 쪽은 자신인데 말입니다.
달마산 중계탑 정상 인근에도 여성성과 흡사한 바위가 있습니다. 일명 여근바위입니다.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 모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그 생김새가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겨울철과 이른 봄에는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남성성을 싸안고 있는 나무 얘기도 겹들이지요. 미황사 부도전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동백나무가 그 주인공이지요. 꽁꽁 숨어있는 곳에 서 있지만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눈에 띄지요.
성이란 밑에서 논하면 음담패설이요, 위에서 논하면 성의 미학이라 했던가요. 제주도에 러브랜드가 들어서는 등 성이 테마관광상품으로 떠오른 시대입니다. 이들 바위들도 이왕이면 자신들도 성의 미학으로 논해지길 바라고 있겠지요.
송지면 송호리에는 처녀굴이 있습니다.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 송호리에 사랑하는 처녀와 총각이 살았답니다. 옛 이야기가 다 그러하듯 어느 날 혼인을 약속한 총각이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납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임, 처녀는 바닷가에 굴을 파고 총각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지요. 그러다가 처녀는 실신해 죽었고 며칠 후 고기를 잡으러 간 총각은 그리운 처녀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를 기다린 것은 싸늘한 애인의 시신뿐. 총각은 처녀가 죽은 굴 위에 또 하나의 굴을 파고 자신도 처녀를 그리다 굶어죽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황산면 연자리 연기섬과 현산면 신방리 낙화암도 여성과 관련된 바위입니다. 지금은 간척으로 육지가 됐지만 연기섬은 온통 바위로 이뤄진 섬이었지요. 고려시대 때 중국 사신으로 떠난 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연기낭자 이야기가 얽힌 곳입니다.
물론 사신으로 떠난 임은 살아서 돌아왔고 사랑하는 여인이 바다에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도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지요. 현산면 백방산 낙화암도 여성들이 뛰어내려 죽었다는 바위이지요. 명량해전 때 전쟁터로 떠나던 낭군이 약속을 합니다. 살아서 돌아오면 배에 하얀 깃발을 꽂고 죽어서 돌아오면 검정 깃발을 꽂고 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날마다 백방산에 올라 임을 기다리던 여인은 저 멀리서 오는 배를 보지요. 불행히도 검은 깃발바위들입니다. 여인은 바위 위에서 투신을 하고 맙니다. 낭군은 하얀 깃발을 걸었지만 깃발에 피가 묻어있었던 것이지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입니다.
바위 중에는 유난히 여성과 관련된 바위가 많습니다. 여인의 아픔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듯 합니다. 임을 그리는 애절한 호소가 바위의 울림이 되었구요. 옛 여인들의 순애보와 애환이 형상화된 바위들이지요.
어찌 보면 바위는 그냥 바위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자연의 온갖 사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겠지요. 그로 인해 그 바위들은 생명력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숱한 세월동안 인간의 관심을 받으며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