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재발견 ⑥ 미황사 천년역사길
2010-07-10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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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에서 시작되는 천년역사길은 부도전까지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큰 길이다. 그러나 부도전 입구부터 시작되는 오솔길은 대낮에도 햇빛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숲 터널이다. 숲길에 들어서면 자아와 자연의 대화가 시작된다. 어둑한 길이 버티고 서서 인간 본연의 내재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서늘한 안개에 가려 익숙했던 저편이 생소해진다. 10여분을 걸으니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숲도 젖고 마음도 젖고 몸도 젖는 물아일체의 시간이다.
20여분을 걸어 숲을 빠져나오니 너덜겅이 나온다. 한 평이나 됨직한 곳에 잔디가 자란다. 바위틈에 핀 키 작은 하늘빛 달개비가 애처롭다. 앉아서 사색이라도 하라는 자연의 배려인지 넓적하게 맞춤한 바위가 있다. 산 아래에서 밀려올라오는 안개가 마치 선계에라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맑은 날은 들녘과 인가가 보인다고 하는데,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은 최주숙씨가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찾는 곳이다. 그녀는 그간 관습, 명예, 지위 등에 얽매여 작은 것에서 오는 행복을 놓치고 살아왔다며, 이곳을 다녀가면 삶의 활력을 받아 가는 느낌이란다. 숲에 의지해 마음을 비우고 산을 내려가면 불어오는 바람이 알몸에 실비단 감기듯 다가온단다. 금방 만나고 돌아서도 늘 사람이 그립고, 그런 사람들이 내뿜는 향기에 취해 살고 싶었지만 향기 없는 인간 또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바위들의 겉을 옷처럼 파랗게 덮고 있는 담쟁이 덩굴을 보면서 그녀는 아쉬워한다. 가을에는 담쟁이 이파리가 없어 바위들이 훨씬 시원하게 보인단다. 들릴 듯 말 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 세끼만 먹으면 되지.”
그래서 신선들은 산에서 살았을까? 하물며 인간도 산에 오르면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청정해지는데….
박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