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 이진마을 천제 - 동행취재기 산 정상서 꼬박 날새며 제사

2010-07-18     해남우리신문
음력 6월 초하루인 지난 12일 새벽, 마을입구가 소란스럽다. 제관으로 뽑힌 박종길 이장과 4명의 주민들이 트럭과 경운기를 끌고 달마산 천제바위를 향해 오른다.
제관인 박종길(47), 여영길(54), 김대현(48), 하광표(47), 김성렬(52)씨는 한달 내내 금기사항을 지켜왔다.
상가도 개고기도 여자도 멀리하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유지해 온 것이다. 이들이 새벽에 동네를 나선 것은 잡스러운 것을 보지 않고 오직 신성함만을 가지고 천제단을 오르기 위해서다.
천제단을 오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천제단까지는 300여 미터. 온통 풀이 우거져 있다. 제관들은 천제단 아래, 제사음식을 만드는 장소에 이르자 짐을 푼 후 제초 작업에 나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식 장만하는 장소에 옹달샘이 있다.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천제샘. 너무도 청정하다.
제초작업을 마친 제관들은 천제샘에서 모두 목욕재계한다. 이때부터 소변을 보거나 더러운 것을 만진 후에는 반드시 목욕
재계를 해야 한다. 제관 모두 이날 3번 이상 목욕을 했다. 목욕이 귀찮으면 물을 마시지 않거나 소변을 참아야 한다.
오후 5시가 되자 제 음식을 장만한다. 오후 5시까지 제관들은 천제샘과 천제단 주변을 말끔히 청소했다. 또한 젯밥에 쓰일 쌀알도 골랐다. 전혀 손상이 되지 않은 쌀알만을 가지고 제를 올려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제에 쓰일 돼지도 잡았다. 돼지는 산채로 가져와 그곳에서 직접 잡은 후 머리만 제상에 올린다. 천제샘에서 쌀과 나물을 씻는데 나물은 세 가지,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음식 장만이 끝나자 제관들은 음식을 들고 웅대한 병풍바위인 천제단을 향해 오른다. 천제단에 오르기 전 작은 바위에 음식을 먼저 놓고 절을 올린 후 천제단에서 공식 제를 지낸다. 천제는
박종길 이장이 촛불을 켠 후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축문 순으로 이어진다.
제가 끝난 후 제관들은 음식을 장만했던 장소로 다시 내려와 이곳에서 꼬박 날을 샌다. 그리고 새벽까지 수시로 천제단에 올라 촛불이 켜져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날 밤은 유난히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제관들은 텐트 안에서 추위에 떨며 날을 새웠고 수시로 빗속을 뚫고 150미터 위에 있는 천제단에 올라 촛불을 확인했다.
북평 이진마을의 천제는 40~50대 젊은 사람들이 잇고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산에서 날을 꼬박 새야하고 험한 지형을 등반한 후 청소를 해야 하는 등 노인들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손수 나서 제를 잇고 있는 것이다.
이곳 천제가 언제 시작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제인데다 한 해라도 거르면 마을에 재앙이 미칠까봐 정성스레 잇고 있는 것이다. 북평 이진마을 천제는 매년 음력 6월 초하룻날 달마산 불선봉 아래 천제바위에서 지낸다.
김희중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