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 연가 정수연(현산면 미세마을)
2010-07-18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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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는 같이 좀 살자고 달려드는 것들이 많다
제비, 처마 밑에 반쯤 지은 집을 헐어버리니 제 키 세 배가 넘는 지푸라기를 입에 물고 빨랫줄 저 끄트머리에 무릎 꿇고 앉아 허락 내려질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밤을 샐 참이다
모른 척 방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뚫어진 창호지로 털 달린 발 하나가 쓰윽 들어온다 구멍으로 슬쩍 비치는 엉덩이를 보니 벌이다 왜 들어오려는 걸까? 값비싼 가구 하나 없는 이 방에
방안을 둘러보니 엇, 모서리에는 벌써 거미가 진을 쳤다 덜덜덜 창호지 떠는 소리에 이놈이 또 들어오려나 창호지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근처에 일 미리미터쯤 되는 알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라운 변장술이라니, 창호지 색깔과 똑 같은 색에 검은 반점 무늬까지, 어느 놈이 알까지 까놓았나
지난 밤에는 인간 몸을 세 번 넘으면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비기라도 알고 있는지 몸을 타넘고 있는 지네를 화들짝 떨쳐낸 적이 있다
지금 난 다른 것들과 같이 살 기분이 아니라 거부하는 중이다 에이, 뭘 그러냐고 능청스럽게 다가오는 저것들을 단숨에 물리칠 것이다 에잇, 불을 꺼도 밖에서는 들여보내 달라고 사방에서 문을 두드린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하니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같이 살자고 찾아갈 날이 온다 땅이 안 되면 하늘에라도 비비고 들어가 좀 같이 살자고 할 날이 온다 그때를 생각하면 문을 열어야 되는데 아직은, 아직은 못 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