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 추모 1주기, 그를 말한다. 조오련 성공 뒤에는 친구가 있었다

2010-07-23     해남우리신문
조오련 선수에게는 그림자 같은 친구가 있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외롭고 힘들 때마다 조 선수의 힘이 되어주었던 김광영(58)씨.
이들은 중학교 친구이다. 중학교 때도 둘은 항상 같이 있었고, 고1때 조선수가 수영선수가 되겠다며 가출할 때도 함께했다. 서울에서의 배고픈 가출생활, 둘은 수시로 만나 숙식을 해결하곤 했다.
조오련 선수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스타로 성장할 때까지 조선수의 곁에는 항상 김 씨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수가 수영계의 거물로 성장하자 둘의 관계는 멀어졌다. 항상 사람들로 에워싸여 있는 조 선수 곁을 김 씨 스스로 조용히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76년 조선수가 군대 입대하기 전 둘은 다시 만났다. 대한해협 횡단 때도, 이후에 이뤄진 도버해협도 함께했던 김 씨는 3부자 독도아리랑 때부터는 아예 감독을 맡았다.
30년 이상 해온 조 선수의 매니저 역할. 먹을 것에서부터 일정 체크, 바다 수온 및 파도 높이, 선수 컨디션 유지, 홍보에서부터 후원자 모집까지 그 모든 일이 김 씨의 몫이었다.
독도 33회 회영 때는 하루 세끼 밥을 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 됐다. 밥을 해주겠다던 아주머니가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가 버리자 밥까지 챙겨야하는 고된 감독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바다수영감독은 일기예보와 파도 높낮이 등을 언제나 체크해야 하는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또한 조 선수가 도전한 각 대회는 워낙 험난하다 보니 훈련은 1년 전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모든 일을 접고 조 선수의 곁에서 보내야 하는 생활 그도 지칠 때가 많았다. 이번 대회만 마치면 떠나야지 했던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끈기와 인내가 대단했던 친구인 조 선수를 두고 떠날 수가 없어 그는 주저앉곤 했다.
눈빛으로만 봐도 서로가 필요한 것을 알 만큼 가까웠던 친구, 조 선수도 김 씨를 놓아주질 않았다. 그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고, 그가 곁에 있어야 대회준비도 출전도 자신 있어 했다. 조 선수가 고향인 해남에 집을 짓고 살 때 그도 해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2008년 독도 33회 회영 성공 후 조 선수는 대한해협 횡단 재도전에 나선다. 2010년 대한해협 횡단 도전 훈련을 위해 제주도로 떠나는 조선수를 김 씨는 말렸다.
예전과 달리 너무도 힘든 도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그러나 조 선수는 제주도로 떠났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굽히지 않는 친구의 성격을 알기에 그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훈련 도중 잠시 고향에 들린 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김 씨는 오련이는 개성이 강했고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했기에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제1회 조오련배 땅끝바다수영대회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친구를 기리는 첫 수영대회를 개최한다는 말을 듣고 선뜻 사무국장을 맡고 나선 것이다. 그는 친구인 오련이는 죽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한 것 같다며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박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