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정욕(情慾)의 나라, 아! 大恨民國 -김영일 목사(계곡사정교회)
2010-02-22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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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은 기존의 시험을 치르지 않는 대신, 학년별로 매월 5권의 책을 선정하여 월말에 ‘독서평가’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집에서도 책을 읽는 생활습관을 들이자는 취지를 덧붙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섯 권의 책을 모두 구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요즘처럼 학교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실마다 조금씩 비치되어 있던 도서는 누가 먼저 빌려 가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함흥차사였기 때문에, 그달 치 책을 모두 읽어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방과 후에 내가 찾아간 곳은 읍내에 있는 서점이었다. 학기 초에 전과를 사기 위해 연례적으로 들렀던 그곳을 매일 찾아갔다. 주인 아저씨의 눈치를 봐가면서 매일 한 두 시간 정도 책을 본 후 인사를 하고 나오는 것으로 그날의 일과가 끝났다. 가끔은 한 두 권 정도 구입을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서점에서 읽고 나서 월말 독서평가에 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읍내에 있는 군 도서관을 이용한다든가, 5명이 한 조를 짜서 한 권씩 구입하여 돌려보는 방법도 있었는데 지혜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무튼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처음 갔을 때, 엄청 높이 들어선 서가마다 빼곡히 차있던 책들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의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아찔하면서도 장엄한 광경이었던 걸로 각인돼 있다.
옛 선인들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 해서 사람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사람노릇 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닦인다고 했다. 당시 지배층이나 양반들의 전유물로 삼았던 책을 일반 평민이나 농민들이 다섯 수레 씩이나 읽기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한글도 아니고 모두가 한문으로 된 책을 어찌 백성들이 읽을 수 있었으랴! 역설적이게도 문자와 지식을 독점한 양반들이 통치한 조선이 결국엔 그 문약(文弱)함으로 인해 망국(亡國)으로까지 치닫기도 했지만 말이다. 최근 영국의 한 일간지가 세계에서 가장 정욕(情慾)이 왕성한 나라를 한국으로 꼽았다고 한다. 포르노 산업(야동)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고 지출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했다고 한다. 사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뱀이나 개구리를 싹쓸이하고, 야생 들짐승을 밀렵하여 먹어대는 ‘몸보신 문화’가 전 세계에 공개된 추악한 우리의 실상이다. 그래서일까. 옛 성현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하는 짓이 딱 두 가지라 했다. 식(食)과 색(色)이 그것인데 한마디로 ‘먹고 싸는 일’이다. 똥오줌을 싸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정욕(色)을 배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짐승들도 하는 짓이 아니던가! 배고플 때 군자는 도(道)를 생각하고, 소인배는 도둑질을 한다고 했다. 배부를 때 군자는 공부를 하고, 소인배는 잠을 잔다고 했다.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 지났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을 깨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던 곰처럼, 내 삶의 골방에 들어가 깊이 성찰할 일이다(冬安居). 소위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는 부자 나라들 가운데 가장 책을 안 읽는 나라라는 부끄러움은 이제 벗어야하지 않겠는가! “아이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책이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