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의 선택과 집중은 무엇일까

2020-05-25     김옥열/다큐디자인 대표
김 옥 열(다큐디자인 대표)

 

 30여 년이 다 돼 가는 기억인데 워낙 생생해서 가끔 입에 올리는 이야기다. 
일본 여행 중 구마모토 현을 지나다 어느 작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주변은 농촌이고 휴게소는 작았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깜짝 놀랄 만 한 풍경이 들어왔다. 휴게소 건물 외관이 멜론 모양이었다. 거대한 멜론이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모양으로 건물이 디자인돼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휴게소 모든 안내판이 멜론 모양이 그려진 디자인이었고, 건물 내부엔 온통 멜론과 관련된 제품들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멜론을 파는 것은 물론 멜론을 가공한 여러 가지 식료품, 멜론모양을 응용한 공산품, 기념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요즘 구마모토 여행을 가면 멜론으로 만든 빵을 사먹는 진풍경이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 떠돌던데 아마 그곳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래전의 기억이지만 그때 경험이 강렬했던 것은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비교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이 다 똑같았다. 전국 모든 휴게소에서 똑같이 오징어와 감자, 떡볶이를 팔았고, 어디나 똑같은 품목의 행상이 있었고 같은 종류의 모자나 의류판매상들이 있었다. 
최근에야 해당지역 특산품을 파는 휴게소들이 생겼지만 지금도 큰 틀에선 강원도나 전라도나 대동소이하다. 마치 전국의 축제장이 어딜 가도 다 똑같은 품바, 똑같은 엿장수, 똑같은 농악놀이가 펼쳐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국 지자체들의 살아남기 경쟁이 치열하다. 
지역소멸이 논의되고 있는 마당이니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이다.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200개가 넘는 지역 도시들이 처한 현실은 비슷하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심각하고 먹거리 경쟁은 치열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지자체의 살아남기 전략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행정의 목표도 비슷하다. 
인구 늘리기, 관광 활성화, 도심재생, 특산물을 활용한 6차산업 육성 등등등…. 
생태축제로 거듭난 어느 지자체가 모범 사례로 꼽히긴 하지만 대체로는 그게 그거고 차별화가 없어 보인다. 비슷한 군정목표에 베껴낸 축제까지….
해남군이 ‘지속 가능한 해남’을 위한 로드맵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 이러저러한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는 그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을 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목표를 세웠다는 데에는 공감하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자면 좀 뜨악하다는 느낌도 든다. 
경제, 농업, 환경, 문화,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하나도 놓치지 않는 저인망식 발전방향을 찾는 모양이다. 발전방안으로 논의되는 사업내용을 보니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다. 
물론 어느 한 분야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 고르게 발전해야 지역민들이 행복하고 지역의 지속가능성도 확보될 것 같다. 
그러나 분야별로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보자고 용역사가 착수보고회에서 먼저 제시한 방향은 다른 지자체들에서도 다 하는 그런 것들이어서 뭐가 얼마나 차별화되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해남이 광역도시처럼 인적 물적 자원과 토대가 풍성하지 않고 인구감소 등으로 여건이 안 좋은 시골 지자체인 점을 감안하면 강점이 있는 분야에 매진해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더 유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해남은 농수산 분야에서 탁월한 강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연환경, 인문환경도 나쁘지 않아 관광객도 꽤 찾는 곳이다. 
그런데 반대로 뒤집어보고, “진짜 이건 해남이야” 할 정도로 해남이 딱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도 많지 않고, 있더라도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해 압도적 경쟁력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그건 반드시 해남에 가야 해” 하는 것 말이다. 
미래에 해남이 생존하기 위해선 대표 산업, 대표 먹거리, 대표 자랑거리를 만들어 집중 육성하고 그 파급효과로 다른 분야도 이끌어가는 것이 나은 전략이 어떨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