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해남, 또 하나의 기록물이 된다

2020-06-01     김성훈/청년작가
김성훈 청년작가

 

 “선생님 저는 남들보다 빨리 연락처를 외워요.”
책 만드는 수업에서 한 아이가 했던 말이다. 아이는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고 있다. 앞뒤 문장 없이, 자신의 취미나 장점 등을 포함한 자기소개를 하는 대목에서 아이가 한 말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외운 연락처를 꾹 누르는 아이의 여린 손가락이 떠 올랐다. 때론 응답이 왔을 것이고, 때론 부재중 통화음만 아이의 귀에 들렸을 것이다. 아이가 전화를 끊었을 때, 아이의 표정이 상상됐다. 실망을 하든, 기뻐하든, 개의치 않다는 듯 하루를 버텨내는 아이의 삶이 드러난 자기소개였다. 
한 아이의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그 아이의 우주에 손을 뻗는 일이다. 책을 쓴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다가가는 일이다. 그것이 때론 얼토당토않은 일이 될지라도, 분명한 건, 아이들은 이 일련의 작업 속에서 한 뼘쯤 성장한다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열매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코로나19가 주춤한다고 믿었는데, 또 한 번 대형 사고가 터졌다. 이태원 발 이후, 쿠팡 물류창고에서였다. 개학을 했던 학교가 다시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재난은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멈춰서 머무르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프리랜서 저술가이자 가디언 전문기사 고정필자인 피터 베이커는 “격변의 시대는 언제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일부 사람들은 팬데믹이 사회를 개조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법한 기회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의 불의가 더 악화되기만 할 가능성을 우려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시대.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하루를 감당하기 벅찬 뉴스들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딴눈 판 사이 코로나19는 엄청나게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이럴 때 마냥 손을 놓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우리 지역은 청정지역이라 안심해도 된다는 일부 낙관론은 지금의 상황을 너무 태평하게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불안해하자는 소리는 아니다.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는 흑백논리 속에 우리 사고를 가두지 말자. 즉, 지금이 코로나와의 전쟁 시기라면, 마땅히 우리는 이 특별한 시간을 각자의 관점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사건에 에둘러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지혜를 한곳에 모으면 좋겠다. 그 열매가 훗날, 하나의 밀알이 된다면 더욱더 좋지 않을까.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삶을 경작할 것인가. 나아가 결과물로써 우리의 책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그것을 활자로써 생산해 내는 것은 퍽 고되고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이때야말로 기회가 아닐까. 
서양의 투기디데스는 27년간의 전쟁을 기록한『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류성룡은 임진왜란 7년의 역사를 기록한『징비록』을 현대의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위인들의 업적과 비견할 바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한 인물이 한 지역에서 느끼는 감성은,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자, 내일을 이끄는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을까. 
기록은 고통의 분담이자, 대상에 대한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각자가 쓴 한 구절의 문장이, 때론 읽었던 책, 들렸던 소식, 봤던 사물, 사람 등등일지라도 한데 모으면 책이 된다. 꼭 그것이 어떤 학력이나 경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남군민이 생각하고 느낀 코로나19면 족하다. 
역사의 날줄과 씨줄은 지금 그 순간을 기록했기 때문에 후대에 이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