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두면 안되겠습니까?

2020-06-23     김옥열/다큐디자인 대표
김옥열/다큐디자인 대표

 산업화와 개발이 늦은 전라도 땅엔 유독 도로확장이나 신설이 늦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지역을 다녀와서 늘 하던 말이 이랬다. 
“경상도는 가면 4차선은 기본이고 6차선 8차선도 많더라…. 거긴 넓은 도로에 트럭들이 줄지어 달리고, 전라도는 자가용만 다니더라” 뭐 이런 식. 실제로도 그러했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DJ정부 출범 이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전라도 땅에도 도로가 팍팍 뚫리기 시작했다. 새 도로가 나고, 기존 도로는 쫙쫙 펴지고 넓어졌다. 자고 나면 새 도로가 생기는 듯했다. 하도 길이 변하는 탓에 네비게이션은 늘상 제 길을 못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길을 넓히는 것은 이동시간의 단축, 교류확대 등 긍정적 요소도 많다. 부산 쪽보다 늦었지만 KTX가 깔리면서 나타난 변화가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이제 무조건적인 길넓히기, 뚫기는 한 번 쯤 재고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10년도 훨씬 더 오래전, 필자는 이런 시민운동을 한번 해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전라도 땅은 더 이상 도로 뚫기나 확장을 멈추고 구불구불한 길을 그대로 보존합시다’라는. 이른바 옛길 보전운동! 모두들 넓은 길로 빨리빨리만 달리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모두 개발만을 외치며 넓히고 뚫고 키울 때, 꼬불꼬불 정겨운 길이 남아있는, 그래서 주위 경치를 둘러보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길을 가진, 우리 전라도라도 옛길을 더 넓히지 말고 보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실제로 시골의 2차선 굽은 도로를 확장하면 옛길 그대로 두고 높이를 높인 확장도로를 새로 내는 경우가 많고, 결국 그 길은 도시에서 오는 차들만 빨리 달려가라고 만든 꼴이 된다. 
그 사람들은 옛길 주변의 우리네 삶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눈길도 주지 않으며 하다못해 구멍가게 하나도 이용해주지 않는다. 시골사람들은 도로로 인해 더 고립되고 황폐화하는 역효과까지 낳는다.
구불구불한 옛길을 개발하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생각을 낳은 지점이 거기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 빠르고 편한 것만 찾던 흐름에서 느리고 불편하지만 삶의 안정과 작은 행복을 찾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환경도 개발보다는 가능하면 보존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차로 막 달리기보다는 시골이나 산길, 바닷길을 느리게 걷는 게 유행이다. 제주 올레길이 그래서 생겼고, 달마고도의 인기가 그래서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아직 남아있는 전라도 구불길들은 좀 보존하면 안될까?
이야기를 멀리 돌아온 것은 군이 대흥사 숲길을 정원길로 만든다는데 말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대흥사 숲길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걷기길로 조성하나보다. 용역보고회까지 열렸다니 물리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대흥사 숲길의 가치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참 아름다운 길인데 왜 갈아엎지? 
이 사업은 아스팔트 찻길 대신 걷기길로 바꾸면 좋을듯해 시작한 사업일 게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재 길을 걷어내 걷기길로 바꾸는 대신 찻길은 또 어디 새로 내는 모양이다. 
내 생각엔 그럴 바에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지금의 길도 이제 나름의 자연상태의 하나가 되었고, 주차장을 만들어 차량통제도 어느 정도 가능한 상태다. 지금도 사찰차량 외 차만 통제되면 사람들은 충분히 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고 만족도도 높다. 새길을 내려면 또 상당한 파괴가 불가피한데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보여주기 행정 같다.
물론 돈 들여 꾸며놓으면 멋질 거다. 그러나 왜 자꾸 새 걸 위해 헌 걸 버리고 파괴하려만 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결정은 누구에게 물어보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만들고 싶은 전시행정 욕심에, 유행을 따르고 싶은 마음에 삽부터 들이대는 일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