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그랜드마스터 플랜 없나?
전 의원이자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인 박지원씨의 청와대 근무시절로 기억된다. 전남대학교에 특강차 내려온 박 전 의원의 말 중에 인상적인 한 마디가 있었다.
“청와대에 근무하다 보니 각 지역의 굵직한 사업유치를 위한 로비가 많이 들어오더라. 그런데 가만 보니 큰 특징이 있더라. 어떤 지역 사람들은 양복에 와이셔츠까지 입고 넥타이 하나만 사달라고 조르는 형식인데, 어느 지역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이 속옷만 입고 와서 양복까지 사달라고 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도 넥타이값이 양복값보다 수십 배는 많고.”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중앙에 대형사업을 유치해본 경험이 많은 지역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핵심적인 어떤 부분(또는 예산)만 도와주면 사업이 되도록 준비해오는데, 그렇지 못한 지역은 처음부터 다 해내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더라는 말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광주광역시가 ‘대통령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언급한 김치관련 대규모 프로젝트’를 아이디어 빈곤으로 ‘따먹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던 시절이라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온 박 전의원의 말이었다.
해남군이 연달아 각종 공모사업에 고배를 마셨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군이 무엇을 따냈다는 소식보다는 탈락했다는 뉴스를 더 많이 들은 것 같아 씁쓸하다.
가장 최근엔 전남도가 추진하는 ‘남도의병역사공원’ 공모사업에서 나주 보성 등에 밀려 낙방했다. 또 그에 앞서서는 정부가 공모한 기후변화 국책사업인 아열대작물 실증센터 선정사업에 전남도의 추천을 받긴 했으나 최종적으로 장성군에 밀려 떨어졌다. 국립 아열대작물 실증센터는 350억 원을 들여 아열대성 기후변화, 관련 작물 재배기술 등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해남군이 최적지로 생각하고 유치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
그뿐이 아니다. 지난 2018년엔 스마트팜 혁신밸리 선정에 도전했지만 1차에 탈락하고 2차 도전은 기회마저 고흥에 넘기는 사실상 수모를 당한 바도 있다. 이 사업의 전체 규모는 1천억원이 넘는다.
이렇게 큰 사업만 진 것도 아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최종 선정한 '지역관광추진조직' 선정에서도 전남에선 인근 강진과 여수가 선정됐으나 해남은 밀렸다. 이 사업은 규모가 작지만 내실 있는 사업이었다.
물론 이런 공모사업의 최종 주체는 해남군이기도 하고 상급기관인 전남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남도가 정치력을 발휘하고 창의적 유치전략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나 도에서 대표선수를 선발하더라도 시군의 응모와 준비가 필수적이고 그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볼 때 최종책임의 정도는 유치에 나선 해당 시군에게 크다.
개인적으로는 지자체들이 모든 공모사업에 나서는 것을 반대한다. 국책이나 도 추진 굵직한 사업을 따내면 단체장으로서는 자랑하기 좋은 소재다. 때론 지역발전의 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업을 다 하겠다고 덤비고, 그것도 단체장 치적용으로, 단체장의 지시에 의해 달려든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거기에 지역의 특성과 미래전략은 따지지도 않고, 실력도 없이 ‘남들 하니까’ 그냥 덤빈다면 그 행정력과 예산낭비, 지역의 명예는 어떻게 되는가?
고흥군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164억원짜리 5G 통신전용망과 드론상용화실증지원센터를 유치한 고흥군은 주로 항공관련 사업 쪽으로 여러 사업유치를 특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방향도 좋고 성과도 좋을 수밖에 없으리라.
해남군은 어디를 바라보고 이런저런 사업유치에 나서는지 한번 묻고 싶다. 비전은 뭔지, 장기 전략은 무엇이고, 그에 따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한다. 그랜드마스터 플랜부터. ‘넥타이’ 하나만 빼고 다 준비할 정도의 지략과 준비성부터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도전하면 따내야 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