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갈등관리 현실적 어려움] 갈등조정 조례 만들었지만 무용지물

지자체 추진 의지, 전문가 양성 중요

2020-08-14     김유성 기자
천안시는 지역 내 갈등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고 주민자치형 마을갈등조정 제도를 시행했지만 현재는 멈춘 상태다.

천안시는 2016년 전국최초로 주민자치형 마을갈등조정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18명의 조정위원을 위촉했다. 마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배출,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을 비롯해 각종 시책에 따른 갈등을 주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마을갈등조정자로 활동할 주민자치위원 20여명은 6주 동안 의사소통 및 조정기법 등 전문적 기술을 익히는 교육도 받았다. 이어 천안시는 마을갈등조정제도를 2017년 1년 동안 8개 읍면동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2018년부터는 30개 이상의 읍면동으로 확대할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이유는 조정자들의 전문성 부족과 중간지원조직이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위원을 위촉했지만 이들이 일할 곳도 일을 주는 곳도 없었던 것이다. 
천안시 관계자는 “갈등이 일어나면 누군가 조정자들에게 갈등 조정을 의뢰해야 활동 영역이 생기는데 중간지원조직이 없다보니 사실상 움직임이 없다. 내부적인 협의에서도 제3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마을조정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나 광주시의 경우 위탁기관에서 독립된 이웃분쟁센터를 운영하고 상담자 교육과 관리를 전문적으로 이행하며 어느 정도 실효성을 보이는 반면 중간지원조직 없이 교육만을 통해 조정자를 배출한 천안시는 일할 수 있는 영역도 체계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성과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교육을 마친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내 길고양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했고 좁은 주차공간으로 일어난 원도심 주차분쟁도 조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해남군도 민선7기 공약인 갈등방지 및 조정을 위한 군민 배심원제를 운영할 계획으로 지난해 말 조례를 제정했다. 천안시도 2011년 ‘갈등관리심의위·갈등조정협회’를 구성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례를 만들어놓고 갈등해결에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천안시 일봉산은 민·관, 민·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천안시는 현재 시책사업 추진과 관련해 수많은 갈등을 맞고 있다. 민간특례사업으로 추진된 일봉산 개발사업은 전임시장이 물러나기 직전 협약체결 사업자 선정 등으로 논란이 발생했고 축구종합센터, 천안삼거리 공원 문제 등도 시민들과의 갈등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정작 수년 전 이 같은 문제를 풀어내고자 제정된 ‘천안시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조례’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조례를 보면 시장은 갈등예방 계획을 수립 및 추진하고 주요 시책이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정책 결정 전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시책과 관련해 갈등예방과 해결을 위해 시민단체, 갈등해결 전문가, 대학교수 등 20명 이내로 갈등관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주요 문제의 경우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갈등 사안에 대한 조정절차를 통해 협의 결과물을 만들어 이해 당사자들에게 제시하는 활동도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일봉산 개발사업은 토지 소유주, 공원 이용자, 주민 등 민·관 민·민간의 갈등이 뻔히 예견된 상황임에도 갈등예방 조례가 제정된 지 8년이 넘도록 갈등조정협의회는 물론 갈등관리심의위원회 마저 구성하질 못했다. 여기에 갈등예방 계획, 갈등영향분석 등도 편성된 예산이 없어 ‘갈등관리심의위·갈등조정협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례가 되고 말았다. 
천안시 관계자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협의회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지역 내에 조정전문 인력풀이 형성돼 있지 않고 협의 결과에 따른 실효성을 어느정도 거둘지도 어려웠다”며 “늦었지만 정책거버넌스 및 갈등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공론화 연구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거버넌스 체제를 정비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모든 지자체마다 시책에 따른 갈등이 발생한다. 또 이에 따른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갈등관리는 지자체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또 천안시처럼 갈등조정 조례가 있어도 지자체의 의지가 약하면 운영자체가 미흡하다. 
그러나 시책에 따른 로컬거버넌스를 기반한 협의 과정은 민관이 아무리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된 것이다.
한편, 일봉산 민간개발 특례사업은 40만 2614㎡ 부지에 6700억 원을 투입해 약 30%인 11만 7770㎡에는 182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서며, 나머지 70% 부지엔 산책로와 전망대, 풋살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