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다, 아이 노니는 건강한 농촌마을을
몇 년 전 한겨레에 실린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가 호남에 가장 많이 있다는 기사. 여전히 유효한 기사가 아닐까 싶다. 워킹푸어(WorkingPoor·근로빈곤)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2000년대 귀농해 버섯을 재배하며 농사자금으로 대출한 채무가 있다. 그와 관련해 연대보증인으로 채무자가 파산해 안게 된 채무도 있다. 그것들은 살아가는 내내 나의 뒷목덜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디에 선들 자신 있게 삶을 꾸리는데 제약 요인이기도 하다.
지난 토요일 현산면 신방리 ‘더불어 행복한 큰 마을, 백방산 마을 이야기’라는 마을공동체 사업 일환인 마을벽화 그리기 사업에 자원봉사 요청이 들어왔다. 센터 이용 아동 29명 중 11명이 신방리에 살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으려니 생각해 아이들과 논의해 진행을 했다.
밑그림이 그려진 벽에 색을 칠하는 작업에 힘겨워하면서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로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도 온 동네가 시끄러운 하루였다.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해 준 맛난 점심과 간식을 마을 분들과 함께 하는 동안 어르신들도 아이들을 마주하며 옛 기억을 소환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시는 것 같았다.
“오메, 자가 **이라고 , 영락없이 지 큰 애비 닮았네.” “아야, 저것이 벌써 저렇게 커 중학생이라고!” “야는 우리 교회를 다닌께 다른 마을 애기여도 자주 봤지만, 같은 마을 살아도 야는 몰라보것다! 초등학교 다닐 때 봤는데 ”
한마을에 살면서도 이른 아침 논밭 들녘에 나가 일하시는 어른들, 학교며 센터를 오가는 바쁜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마주칠 일이 없어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보는 참 우픈(우습고 슬픈) 광경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폭염주의보 가운데서도 마을 벽에 색이 입혀지면서 마을이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광경을 보게 됐다.
마을 속에 아이가 서 있는 그 그림, 미래 세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을. 우리가 꿈꾸며 그려야 할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5년, 10년, 20년, 50년, 100년이 지나도 마을 속에 아이들이 살아가길 바란다.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온 마을을 휘감아 돌길 소망한다.
20여 년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왔으나 난 여전히 채무자로 살고 있는 워킹푸어다. 그래서, 더욱 꿈을 꾼다. 해남에서 사는 것,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 농촌마을을 만드는 것. 단초는 워킹푸어 없는 농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