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에너지 주는 청년센터를 기대하며
봉투로 건네받은 ‘청년센터(가칭)’ 프로그램 수요조사 설문지를 칠판에 붙였다. 메탈로 된 자석이 칠판에 ‘쩍’ 붙는 소리를 냈다.
네이버 앱을 통해 전달받은 설문지도 있었지만, 수기로 작성된 설문지가 더 반가웠다. 설문에 담긴 목소리가 제각각이듯 해남 청년들의 필체를 보는 것은 작은 재미였다. 해남군청년정책협의체 위원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조사를 하고 내게 건넨 설문지는 146명 것이었다. 설문지에서는 절임배추의 소금 냄새가 설핏 스며 있는 것도 같았다. 한 장의 설문지가 이어져, 해남지역 청년들의 행성에 닿았고, 이들이 모여 우주가 되어 작은 내방, 칠판에서 그것은 코스모스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해남군청년정책협의체 프로그램 수요조사 자료집을 만들어 해남군 인구정책과 해남군청년협의체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많은 수의 표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한 이들의 의견이 해남군 청년 전체의 의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역 청년 146명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다뤘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지역 청년들이 스스로 움직여 지역 거주 청년의 목소리를 응축해 담아낸 역사가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향후 청년 센터의 운영에 토대가 돼야 한다는 의견을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위원들은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면서 틈틈이 조사를 했다. 외부 용역이 빚어낸 수도권 중심의 ‘청년’ 상으로서 집계된 설문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자신의 가치의 결을 지키고자 하는 청년들의 ‘말’이 설문 조사 결과 총평에 드러났다.
예를 들어, 일자리 정책, 복지, 환경 조성 등도 중요하지만, 삶의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이지만 해남군 지자체 내에서는 그러한 기술을 받을만한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개선되길 바라는 청년들의 마음도 드러났다. 획일적인 프로그램 양식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은 항목에 대해서도 청년들이 응답을 해줬다.
최은미의 단편소설「여기 우리 마주」(2021현대문학상수상소설집)의 수미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우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자, 14살 자녀를 기르는 지역 맘이다. 언제나 선 캡을 쓰고 다니는 그녀는 학원 차량 운전기사였다. 아이들의 하교가 시작되기 전이나 저녁 차량 운행이 시작되기 전에 홈 공방에 들러 간단한 비누나 캔들을 만드는 취미를 가졌다. 정확한 차량 시간과 아이들의 승하차를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수미에게 공방의 취미는 잠깐의 숨돌림을 허락하는 시간이었다.
늘 긴장된 채로 유빈이가 잘 탔다고, 세훈이가 잘 내렸다고 각각의 학부모들에게 연락을 해야하는 수미의 삶에서 공방은 삶을 좀 더 살아가는 재충전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틀을 내리 앓을 정도로 아팠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소설은 그녀를 바라보는 공방 주인의 시선으로 그려졌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대의 이야기 플롯이어서 수미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된다는 설정은 핍진성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한 것은, 코로나19만은 아니었다. 긴장된 수미의 삶을 충전해 줄 요소, 개인이 각개 전투를 치르며 찾아가야 하는 공방이라는 은유가 먼저 읽혔다.
필자는 마땅히 지역의 청년 센터가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삶에 치여 이리저리 끌려가다가 에너지가 소진된 청년의 상이 아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자들이 걷는 언덕길에 등을 받쳐주거나 밀어줄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이 바로 청년 센터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설문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2021년에는 지역사회에서 좀 더 많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삼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