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소

2021-02-23     민상금(전 서울시의원)
민상금(전서울시의원)

 

 고향 해남 마산면 화내리에서 보낸 소년 시절은 온전히 소와 함께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소를 돌보는 일은 소년의 몫이 됐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소년은 소에게 맛 있는 꼴을 먹여주기 위해 풀을 찾아 논둑 밭둑으로 소를 몰고 다녔다.
 그럴 때면 소 목에 매달려있는 놋쇠로 만든 워낭에서는 풀을 뜯기 위해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댕그렁 댕그렁 소리가 났다.
 마치 핸드벨 악기 소리 같던 청아한 워낭소리가 내 귓가에서는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형편에 따라 아버지가 소를 팔면 소가 소년 곁을 떠났고, 공부 때문에 또는 일자리 때문에 소년이 소를 떠났다. 소년은 그렇게 소를 통해 이별이 주는 슬픔과 아픔에 대한 삶을 배우며 성장했다. 그래서 지금도 소년의 가슴 한복판에는 소 한마리가 있다.
 2008년 개봉돼 한국 독립영화 역사상 300만 관객을 기록했던 ‘워낭소리’는 지난 시절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를 자식처럼 사랑했던 우리 부모님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소는 아주 먼 옛날부터 농경사회로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가축으로
생사고락과 흥망성쇠를 함께 누리며 언제나 재산 목록 제1호의 영광을 안고 있었다.
 평안남도 덕흥리의 고구려 고분벽화 ‘견우직녀도’에는 견우가 소고삐를 잡고 있다.
 또 황해도 안악 고분의 소와 말 그림, 조선 시대 김홍도의 ‘논갈이’도 소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올해는 신축년으로 소띠 해다. 더구나 명리학자들은 ‘흰색 소띠해’로 부른다.
 소는 다른 어떤 동물이나 가축보다 순박하고 근면하며 어진 성질이 우리 민족성을 닮았다 해서 많은 시와 소설과 그림의 제재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김종삼의 시 <소>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중략>
수천만 년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그림으로는 코로나19 팬더믹 시대를 맞아 이중섭 화백의 ‘흰소’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그림 속 의 흰 소 는 편안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으로 앞발 하나를 내닫고 있는 형상으로 세상을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헤쳐나가는 모습이다.
 마치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나를 보라! 나를 따르라!” 외치는 것 같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올 설날에도 부모 형제와 친인척을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백신과 치료 약이 상용화되면 예전의 행복이 곧 찾아오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